[책&생각] 아무도 병들지 않았다는 거짓말

한겨레 2022. 7.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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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율의 첫 시집 곳곳에선 다치고 아픈 이들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어느 시에선 건물이 무너져 모르는 사람들의 생사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상황이('생활'), 또 다른 시에선 "창문에" "머리를 박"은 새 한 마리가('홀') 등장한다.

시인은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지금 살아있는 것이 우연이라도 다치고 아픈 배경에는 인간이 손수 저질러버린 악행들이 있음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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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의 시동걸기]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정재율 지음 l 민음사(2022)

정재율의 첫 시집 곳곳에선 다치고 아픈 이들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어느 시에선 건물이 무너져 모르는 사람들의 생사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상황이(‘생활’), 또 다른 시에선 “창문에” “머리를 박”은 새 한 마리가(‘홀’) 등장한다. “뿌리를 훤히 드러낸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나무”나(‘현장 보존선’), 겨울을 잃어버린 곳에서 “진흙투성이가 된” 펭귄이(‘0’) 나올 때도 있다. 시인은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지금 살아있는 것이 우연이라도 다치고 아픈 배경에는 인간이 손수 저질러버린 악행들이 있음을 감지한다. 자본과 이익과 발전을 앞세워 목숨을 쉽게 죽음으로 내몰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행해지는 여러 일들은 삶도 죽음도 무엇 하나 제 의미를 갖추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 시인의 눈동자에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어”려운 “스티로폼”처럼 바다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는 심정으로 있는 삶들이(‘부표’), 또는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수신자 자리에 놓인 “실종된” 삶들이(‘온다는 믿음’) 쓸쓸하게 비친다. 함께 살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다치고 아프고 병든다. 먼 후일이 아닌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닥친 얘기다.

“병원에 간다. 병원에 가면 소리를 지르는 사람과 눈물을 참는 사람, 그 사이에서 별 대수롭지 않게 앉아 있는 사람을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까지. 이곳의 꽃들은 조화지만 모두 잎을 활짝 벌리고 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갑자기 어색해진다.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어 참다 견디지 못할 그쯤에 나는 진료실에 들어가 천장을 보고 눕는다. 이제 다 끝난 것이다, 생각한다. 의사 선생님이 배의 윗부분을 누르며 이곳이냐고 묻는다. 나는 거기가 아팠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배의 오른쪽을 누르며 이곳은 아프지 않지요?라고 묻는다. 만약 이곳이 아팠더라면 데굴데굴 굴러서 왔을 거라고 웃으며 말한다. 사실 하나도 웃기지 않지만 //조금 탈이 난 것 같다고, 먹을 것을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과를 지켜보고 그래도 아프면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 나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향한다. 약을 기다리는 동안 뭐 살 건 없는지 둘러보다 밴드와 파스 하나를 구매한다. 또 한 번 약국에서도 내 이름을 들어야 하고, 30분 간격을 두고 먹어야 하는 약은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중략) //나는 오늘과 내일 먹을 죽을 사러 사거리를 건넌다. 집으로 돌아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교차로에선 모두 자기 차례가 언제인지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정재율, ‘종합병원’ 부분)

시는 아팠을 때 병원에 갔던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병원에서 으레 보이는 것, 생각하는 것, 하는 것을 차례로 담담하게 전하는데, 그 사이에 “잎을 활짝 벌리고 있”는 “조화”나, 아픈 ‘나’에겐 통할 리 없는 농담 같은 것이 통증을 분산시키려는 듯 억지로 이 상황에 개입해 온다. 그렇다고 아픈 게 안 아플까. 있는 통증을 없는 것처럼 무마할 순 없다. 1980년, 시인 이성복은 시대를 향해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2년, 시인 정재율은 모두가 분명히 아픈데도 아무도 병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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