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못 말리는 동생을 둔 어린이에게

한겨레 2022. 7.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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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작가는 분명 어른이지만 내면의 어린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간혹 자녀를 낳고 키워봐야 어린이책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괴물들이 사는 나라> 를 읽어보면 그가 내면의 어린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혹은 영어 읽기 실력을 기르기 위해 책을 읽는 어린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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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별 볼 일 없는 4학년
주디 블룸 지음, 오승민 그림, 윤여숙 옮김 l 창비(2015)

어린이책 작가는 분명 어른이지만 내면의 어린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간혹 자녀를 낳고 키워봐야 어린이책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일리가 있지만 옳은 말은 아니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은 평생 자녀를 키워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어보면 그가 내면의 어린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존 버닝햄이나 로알드 달 그리고 주디 블룸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주디 블룸의 작품은 ‘엄마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책’이었다. 그만큼 어린이에서 사춘기로 이행하는 시기에 겪는 십대의 혼란과 갈등, 선뜻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탁월하게 풀어냈다.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에서는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춘기 소녀의 2차 성징을, <포에버>에서는 섹스와 피임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펼쳐내는 식이다.

주디 블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동화를 고르라면 그러나 단연 ‘퍼지’ 시리즈다. 미국에서 1972년 <별 볼 일 없는 4학년>이 나온 이래 <대단한 4학년>, <못 말리는 내 동생>(이상 창비)에 이어 2002년 마지막 권인 <퍼지는 돈이 좋아>(시공주니어)가 출간되었다. 시리즈가 완간되기까지 무려 30여년이 걸렸다. 처음에 작가는 아들을 모델로 삼아 ‘퍼지’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마지막 권은 손자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사이 엄마에서 할머니가 된 것이다.

이야기의 재미는 겨우 네살인 동생 퍼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퍼지는 한번 심통이 나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 부모의 모든 관심은 당연히 동생 퍼지에게 쏠려있다. 피터는 “이 집에서는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만큼 ‘별 볼 일 없는’ 신세다. 하지만 퍼지의 말썽을 수습하는 건 언제나 피터다. 동생은 언제나 형처럼 되고 싶은 법이니까. 퍼지가 저지른 말썽 중 압권은 피터가 애지중지하던 애완동물 거북 ‘드리블’을 삼켜버린 일이다. 놀라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개구쟁이 퍼지는 무럭무럭 자라 마지막 권에서 여섯살로 등장한다. 돈에 흥미를 느끼고 전세계를 퍼지 돈으로 사겠다고 나선다.

흥미롭게도 국내에서 ‘퍼지’ 시리즈는 영어 원서의 판매가 더 활발하다. ‘엄마표 영어’를 위한 필독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퍼지와 피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시리즈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유머와 재미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혹은 영어 읽기 실력을 기르기 위해 책을 읽는 어린이는 없다. 어린이는 다만 ‘퍼지’ 같이 어처구니없고 얄미운 동생이 있어서, 두려워 죽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입만 열면 잘난 척하는 쉴라 같은 친구가 있기 때문에 또는 피터처럼 별 볼 일 없는 처지에 공감해서 동화를 읽을 뿐이다. 어린이에게는 언제나 이야기의 재미가 먼저다. 초등 3~4학년.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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