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세월 가고 정권 바뀌어도 '임차인의 나라'..독일의 비결은?

한겨레 2022. 7.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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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정리한 독일 주택정책사
치열한 논쟁·제도 교차한 150년
'체제' 관점으로 '임차인의 나라' 이해
"정책 카피가 아니라 본질 고민해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베를린에 지어졌던 대단지 주택 후프아이젠지들룽의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으며 현재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임차인의 나라’ 독일 주택정책의 근간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로 꼽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주택, 시장보다 국가
독일 주택정책 150년
문수현 지음 l 이음 l 2만5000원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바로는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다고 가정했을 때 평균 가구소득 기준으로 아파트 매입까지 25년이나 걸린다. 4년 전보다 무려 11년이 더 늘었단다. 애 낳아 기를 만한 데가 마땅찮으니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2050년 1인 가구가 40%에 이를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중 절반은 65살 이상이라니 갑갑할 노릇이다.

독일 주택정책 150년을 들여다본 <주택, 시장보다 국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지은이는 구체적인 뭔가를 ‘카피’할 생각을 말라고 말한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그럴싸해 보여도 이식해 봤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내 집을 선호하는 한국과 ‘임차인의 나라’ 독일은 일대일 비교가 힘들다. 무엇보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고도화하여 나라 밖에서 샘플을 찾을 단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주택 문제를 사회적 맥락과 갈등의 요소들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체제’(regime)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독일의 주택정책은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쳐 제도에 반영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축적된 결과물이다. 따라서 ‘국가 개입이냐, 시장 자율이냐’ 문제보다 ‘주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에 대한 그들의 고민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2019년 8월 베를린의 한 주택 앞에서 학생시위가 벌어졌다. 건물이 철거가 예정돼 강제 퇴거를 앞둔 대학생 주거 공동체 거주자들이다. “집을, 필요한 사람에게”가 구호였다. 학생들은 월세를 다 냈고, 이웃에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왜 쫓겨나야 하는지를 물었다. 자신들이 누군가의 이윤을 위해 쫓겨나는 상황을 부도덕하다고 표현했다. 공영 텔레비전에서는 이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도했다.

또 다른 예. 한 시민단체가 3천호 이상 임대주택을 보유한 주택회사를 국유화하자는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놀랍게도 베를린시 유권자 7% 이상의 지지를 얻어 투표에 부쳐졌고, 더 놀랍게도 과반수 득표를 했다. 시의회가 이를 위해 법을 만들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국유화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 실현될 수 없는 일인데도 그랬다.

그렇다. 독일에서 임차인은 당당하다. 우리나라처럼 주택시장의 약자나 패배자로 취급받기를 거부한다. 거대한 뿌리가 있어서다. 독일제국, 바이마르공화국, 동독과 서독, 현대 독일에 이르기까지 독일 주택정책의 주안점은 ‘임차인 우선’이다.

주택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때는 도시화가 진행된 독일제국 때. 방 2~3개의 주거지 50~80개가 밀집된 대규모 임대주택, 이른바 ‘임대병영’이 대표적 증상이다. 환기, 통풍, 화재 대비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수요 공급의 불일치가 심해 임대계약은 몇 개월짜리, 그 뒤에는 임대료 인상이 뒤따랐다. 1872년 베를린 블루멘슈트라세 소요가 상징적이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려 재임차인을 받았다는 이유로 쫓겨날 위기에 놓인 목수의 상황이 발단이었다. 당시 하루 중 몇 시간 침대만 빌려주는 ‘재임차’는 일반적이어서 퇴거 사유가 되지 않았다. 시위는 1848년 바리케이드 전투와 비교될 정도로 격렬했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국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건설, 토지 투기를 막기 위한 과세안 등이 논의됐다.

2019년 독일 베를린의 어느 다세대주택에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의 임대료는 오랫동안 유럽 다른 도시들에 견줘 싼 편이었으나 2008년 이후 두 배 이상 치솟았고, 시정부가 단행한 ‘임대료 동결’ 정책을 두고 위헌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단명했지만 빛나는 바이마르 공화국. “모든 독일인들에게 건강한 주택을 제공하며 모든 독일 가족들, 특히 다자녀 가족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주거 및 경제적인 공간을 보장하고, 남용을 막도록 하고자, 토지의 분배와 사용이 국가에 의해 감시된다.” 헌법 155조에 주택정책의 근본 원칙을 천명했다.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임대인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주택 강제 경제’ 정책을 폈다. 이는 민간자본 유입을 막는 결과를 낳았고 정부가 나서서 ‘주택 이자세’를 재원으로 신규 주택 건설을 지원했다. 노동운동 세력, 유명 건축가들이 개입해 베를린에 대단지 주택이 지어졌다. 후프아이젠지들룽, 바이세 슈타트, 본슈타트 칼 레기엔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으며 현재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공화국 때 굳어진 임차인 보호법은 향후 100년간 지속된 독일 주택체계의 중요한 축이 됐다.

동서독 시기. 동독은 주택이 상품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오로지 주거권 관점으로 접근했다. 40년 동안 평당미터당 임대료를 1마르크로 동결했다. 신도시 조립식 주택에 매진해 말기에 인구 절반이 거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주거 환경의 악화를 불러 체제 붕괴의 원인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서독은 바이마르공화국처럼 주택 강제 정책을 펴 주택의 상품성을 극도로 제한했다. 임대계약 해지 요건을 매우 제한하고 임대료는 최근 수년간의 임대료 평균을 내어 만든 임대료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머물도록 했다. 1960년 ‘뤼케 계획’에 따라 임대료 제한을 풀기도 했으나 딱 10년뿐이었다.

지은이는 시민의식이 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집의 소유에 따른 책임을 당연히 여기고, 집의 소유로 생겨나는 이익을 부끄러워하며, 주택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적극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낡은 아파트를 부수고 새 아파트를 더 짓는 데 집중하는 정권과 종부세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가 조세저항에 부닥쳐 사라지는 정권이 교차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듯이 정권은 가도 집은 남는다. 우리가 살아왔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집.

동서독 통일 이후 부동산 문제 해법이 포함돼 있어 참고할 만하다.

임종업 <토마토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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