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제목부터 디자인, 번역까지..흠을 찾기 힘들다

한겨레 2022. 7. 1.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책과 늘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서평가들 역시 책을 추천할 때 나름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는데, 간혹 서로 간에 묘한 경쟁심이 작동하는 때도 있다.

다른 서평가들이 먼저 재미있다고 추천하면 갑자기 흥미가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칭찬 일색인 책을 향해서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l 곰출판(2021)

누구에게나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책과 늘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서평가들 역시 책을 추천할 때 나름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는데, 간혹 서로 간에 묘한 경쟁심이 작동하는 때도 있다. 다른 서평가들이 먼저 재미있다고 추천하면 갑자기 흥미가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칭찬 일색인 책을 향해서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서평가들은 마치 보물섬에 도달할 수 있는 비밀 지도를 혼자서만 알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동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는 약간 눈 밖에 나 있던 책이었다. 과학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올해 상반기 인터넷 서점(알라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서평가들을 비롯해 유명 북튜버와 서점 엠디(MD)들이 극찬을 한 책이지만, 그런 ‘주례사 서평’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이 불편했는지 왠지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일부러 멀찌감치 거리를 두던 책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쨌든 읽어야만 했다.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검색해보고 대형 서점을 방문해 기웃거려봤지만, ‘이래서 베스트셀러’라는 칼럼에 소개할 만한 적합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묘한 신비감을 주는 표지 이미지는 일단 합격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지만,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는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우리가 이름 붙여주지 않아도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띠지에 쓰여 있는 문장들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책을 열면 무려 4쪽에 걸쳐 ‘이 책에 대한 찬사’가 펼쳐진다.

책을 주로 구매한 독자층이 ‘20~30대 여성’이라는 사전 정보 때문인지 책장을 넘기면서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책의 중반부까지 평생을 바쳐 물고기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데 헌신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과학자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에 약간의 지루함마저 느껴졌다. 자신에게 찾아든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사람의 삶에 미련하게 집착하는 저자 룰루 밀러의 탐구 정신에 감탄할 무렵, 책은 반전의 드라마를 선사한다. 존경할 만한 과학자, 위대한 분류학자로 여겨지던 데이비드 조던의 이면의 삶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그는 생물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다가 신이 되고 싶어 했다. 자신이 세운 질서 안에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고, 과도한 자기기만으로 우월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삐뚤어진 신념 ‘우생학’의 신봉자가 되고 말았다. 예기치 않게 한 인간의 추악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 룰루 밀러는 자신이 믿었던 어떤 세계가 전복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책의 에필로그에 접어들면서 독자들은 ‘양성애자’라는 룰루의 정체성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이 젊은 세대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뭘까. 물고기라는 메타포를 가지고 우리가 믿고 있는 신념의 세계를 깨트리며, 범주나 질서 또는 기준이나 척도에 도전하려는 룰루 밀러를 향한 응원과 격려 아닐까. ‘물고기 책’이라 불리는 이 책이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모양새는 물론이고, 소설 같은 전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 그리고 깔끔한 번역까지, 모처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