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의식은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온다

최원형 2022. 7.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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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뇌·신경과학자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
뇌가 벌이는 '최선의 추측'만이 경험의 대상
마음·영혼보다 '살아 있는 몸'이 의식의 원천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내가 된다는 것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l 흐름출판 l 2만원

유기체 속 신경세포의 물리적인 시스템으로부터 어떻게 ‘의식’이라는 것이 나타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자기의식’으로 나아가는지,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90년대에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는 이를 규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어려운 문제”라고까지 명명했다. 뇌·신경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어쩌면 우리 대다수가 과거로부터 이어온 고정관념에 의식의 문제를 대입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 예컨대 인간에게 다른 생물과 달리 고유하고 불변하는 의식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17세기에 우주를 마음(사유하는 실체, res cogitans)과 물질(연장된 실체, res extensa)로 구분했던 데카르트의 생각법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영국 서식스대 새클러의식과학연구센터의 공동책임자인 뇌·신경과학자 아닐 세스(50)는 <내가 된다는 것>(원제 ‘Being You’)에서 그동안 우리가 막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온갖 고정관념들을 산산이 깨뜨린다. 과학의 발달은 이미 “우리 뇌는 아주 작은 생물학적 기계인 수많은 뉴런의 활동을 결합해 의식적 경험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은이는 이런 물리적인 활동 너머에 의식에 대해 숨겨진 어떤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어려운 문제”) 대신, 의식적인 경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현상에 집중해보자(“실재적 문제”)고 제안한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주관적으로 경험한다는 것, 곧 ‘현상성’이 있다는 것이다. “의식적 경험만이 우리에게 전부”이므로, 우리는 거대 이론이 아니라 의식적 경험이 구조화되는 방법과 형태 등 그 속성을 살펴보는 ‘실재적’ 접근으로부터 출발해볼 수 있다.

지은이는 자신의 이론을 ‘동물기계’ 이론이라 부르는데, 이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비튼 것이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기계와 마찬가지라고 봤다. 그러나 지은이는 되레 인간(을 포함한 생명)은 살아 있는 유기체, 곧 ‘동물기계’이기 때문에 의식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의 중심에는 ‘지각’을 ‘제어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 보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뇌는 두개골 안에 들어앉은 일종의 컴퓨터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도록 감각 정보를 처리해 바깥세상에 대한 내면의 그림을 구축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이때 감각 기관은 외부 사물을 보는 어떤 투명한 창을 제공하고, ‘지각’은 뇌가 그렇게 접수된 감각 데이터들을 ‘읽어내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은이가 연구한바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빨강을 볼 때 감각 신호 자체는 ‘빨강’을 보증하지 않는다. 뇌 속에 특정 감각 신호를 ‘빨강’으로 옮겨주는 해독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빨강을 지각하는 것은 바깥에서 뇌로 ‘상향식’으로 흐르는 감각 신호가 아니라, 감각 신호의 원인에 대한 예측을 하고 이를 실제 감각 신호와 견줘보는 뇌의 ‘하향식’ 작용이다. 통계학자 토머스 베이스가 제시한 ‘귀추적 추론’처럼, 뇌는 감각 신호가 무엇인지 설명해줄 가장 가능성이 큰 원인을 능동적으로 추론해 어떤 모델(생성 모델)을 만들고 그 오류를 최소화하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식은 결코 빨강 자체를 경험할 수 없으며 오직 뇌가 만든 ‘최선의 추측’만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입력된 감각 정보를 처리한 뒤 행동으로 출력하는’ 식의 중앙화된 마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론 멈춰 있지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하는 그림. 뇌가 ‘최선의 추측’을 한 결과다. 흐름출판 제공
아닐 세스는 의식과 지능은 분리 가능하며 지능은 의식 없이도, 의식은 지능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흐름출판 제공

우리의 지각 구조가 이처럼 ‘제어된 환각’임에도 우리는 왜 이를 객관적인 실제로 경험하는가? “지각의 목적은 움직임과 행동을 이끌어 유기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 곧 무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인식해야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대응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필요에 따라 우리의 지각은 실제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거나, 반대로 실제로 변화하지 않는 것을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사물의 인과성, 심지어 시간까지, 지은이는 모든 지각적 경험을 이 ‘최선의 추측’ 모델로 설명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에 대한 지각과 의식 역시 “아주 특별한 종류의 ‘제어된 환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짜 고무손을 자신의 손으로 착각하는 ‘고무손 착각’ 실험처럼, 이미 여러 실험들에서 ‘내가 된다’는 경험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일인칭 시점의 경험으로부터 개인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서사적 자기, 사회적 자기 등 ‘자기’에는 여러 층위가 있는데, 지은이는 그 밑바닥에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정서와 기분, 곧 정동적 경험에 주목한다. 내수용 감각을 통해 경험되는 이런 정서와 기분은 외수용 감각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최선의 추측’은 동일하게 작동한다. 다만 세상에 대한 지각적 추론은 사물을 발견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지만, 내수용 추론은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 그 대상(몸)을 생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컨대 곰이 다가올 때 경험하는 두려움은 ‘곰이 다가오는 상황에 놓인 내 몸’을 생존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지은이의 결론을 거칠게 풀이하면, ‘자기’는 살아 있는 유기체가 신체의 생리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안정적이라고 상정해두는 어떤 환각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우리의 신체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기’의 주관적인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아예 지각하지 않는다. 신체의 내적 상태가 실제보다 더 안정적이고 덜 변한다고 시스템이 ‘잘못’ 지각해야 효과적인 생리적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적 경험은 살아 있는 우리 몸에서, 몸을 통해, 그리고 몸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니 우리는 “인지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느끼는 기계”, 곧 ‘동물기계’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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