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남 불행은 내 행복, 전쟁서 한몫 챙기는 나라들
對러시아 제재 동참 않거나 親러 행보
속앓이 서방, 이중적 모습 눈뜨고 방관
美, 러 밀착 인도 對中 견제 위해 인내
도덕 부재 국제사회, 리더 인성도 영향
지난달 30일 끝난 이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의 최고 수혜국은 튀르키예(옛 터키)다.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느낀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려 하자 반대했는데, 지난달 28일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 직후 미국은 튀르키예의 숙원이었던 최신예 전투기 F-16 40대를 튀르키예에 판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나토 회의장에서 열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간 양국 정상회담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결국 튀르키예는 나토의 비토권을 자기 잇속을 챙기는데 활용한 셈이고 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남의 불행 와중에 내 행복을 챙긴 것이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튀르키예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의 뒤에서 잇속을 챙기는 국가들이 있다. 튀르키예 외에 인도와 중국이 대표적이다.
◇최첨단 전투기 확보에 이용한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나토의 일원이면서도 대(對)러시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종전협상을 중재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튀르키예는 나토의 신규 회원국이 되려면 30개 회원국 모두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을 십분 활용했다. 튀르키예가 반대한 이유는 표면적으로 튀르키예 내 투르드반군을 스웨덴과 핀란드가 지원했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반대 카드를 갖고 잇속을 챙기려는 데 있었음이 이번 F-16 전투기 확보에서 드러났다. 미국 국방부는 튀르키예가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찬성으로 얻는 보상은 없다고 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은 튀르키예가 작년 10월 러시아로부터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자 F-35 전투기 공동개발팀에 참여시켰던 튀르키예를 축출하고 최첨단 전투기 판매를 금지했었다. 결국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숙원을 푼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에 무인공격기(공격용드론) 바이락타르(Bayraktar)를 팔아 쏠쏠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전쟁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로도 삼았다. 튀르키예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단을 초청해 협상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브라힘 칼린 대통령실 대변인은 미국 언론에 돈바스 독립과 크림반도 합병 인정은 이곳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타협할 수 없는 일이라며 러시아의 돈바스지역 독립 요구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슬쩍 러시아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서방의 편에 서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 튀르키예의 스탠스는 철저히 중립적이고 자국 이익 우선이었다. 나토 회원국이면서 다른 나토 회원국이 러시아를 제재하고 비난하는 데 동참하지 않았다. 튀르키예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익확보 기회의 무대였을 뿐이다.
◇러시아 원유 수입 25배 늘린 인도
인도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비웃기라도 하듯 전쟁 발발 후 러시아로부터 원유 수입을 대대적으로 늘려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도는 전쟁 발발 후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25배 이상 늘렸다. 이달 들어 하루 평균 수입량이 100만 배럴에 가깝다. 전쟁 전에는 3만 배럴 수준이었다. 심지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26일 독일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초청돼 참석한 자리에서도 대놓고 제재 동참에 난색을 표했다. 서방은 어떡하든 인도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6000억 달러(약 780조원)을 개도국에 투자하면서 인도 인프라 투자계획을 밝혔다.
그럼에도 모디 총리는 중립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도는 오히려 러시아와의 무역 확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러시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화상으로 열린 BRICS 정상회의에서도 러시아와 친선우호관계를 과시했다. 이러한 인도의 행보는 서방의 대러 제재를 무력화하는 행위다. 반면 인도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서방이 러시아로부터 원유 수입을 줄이면서 하락한 가격으로 유럽 분 분량까지 값싸게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도가 저가의 러시아산 원유를 횡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인도를 보고서도 미국은 섣불리 제재할 수도 없다.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정책에 인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인도는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 국가이다. 인도는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만든 안보체제 '쿼드(Quad)'의 일원으로서 지정학적으로 인도는 린치핀 역할을 한다. 이래저래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꿀을 쭉쭉 빨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로 횡재한 중국
중국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익 극대화에 이용하고 있다. 중국 영자매체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유한공사(CNPC)가 지난 17일 러시아 국영천연가스회사 가스프롬과 공급확대 계약을 체결했다. 가스프롬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천연가스량은 전년 동기 대배 67%나 증가했다. 중국은 그동안 천연가스 수입량의 절반가량을 호주에서 들여왔다. 그런데 호주가 근년 들어 중국의 패권적 외교에 대응해 반(反)중으로 노선을 전환했기 때문에 중국으로선 수입선이 불안한 상황이었다. 나아가 자신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호주로부터 천연가스를 사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천연가스 무역 확대는 서로에게도 이익이다. 러시아로서는 유럽 판매루트가 막힌 것을 중국으로 돌릴 수 있고, 중국은 수입선을 호주로부터 러시아로 돌릴 수 있다. 더구나 러시아는 중국에 상당히 할인된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은 러시아와 경제협력도 강화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양국의 교역 규모는 크게 늘었다. 중국 해관총서(한국의 관세청 격)에 따르면 올들어 5월 말까지 중·러 무역규모는 658억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29% 증가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생긴 허점을 이용해 튀르키예, 인도, 중국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들이 빨아대는 '이익'은 결국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대폭 줄이거나 금지하면서 유럽이 보게 되는 '손실'이다. 국제사회가 아무리 도덕, 염치, 의리도 없는 정글과 같은 곳이라고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 국가나 국익을 마음대로 추구할 수는 없다. 이들 3개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 규모가 중견 이상이 되고, 지정학적 강점을 갖고 있으며, 지도자가 권위주의적이거나 국내 정치적으로 호적수가 없는 국가라는 점이다. 결국 국제사회라는 정글에서 도덕과 염치에 눈 감고 국익을 추구하려 해도 힘이 없거나 지도자가 몰염치한 인성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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