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6·25전쟁이 남긴 ‘자유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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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참전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 폭군의 노예
대한민국의 의무는 北에 자유 찾아주는 것
한 국민을 파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를 황폐화하는 것이다. 일제 식민사학이나 중국 동북공정도 그런 수법을 썼다. 하지만 때로 그 저의를 간파하기 어렵다. 지성이나 양심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에 관한 담론도 그런 사례다.
2017년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한국전쟁은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해 일어난 대리전”이었고, “미군이나 동맹군이 남한 주민을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말했다. 6·25전쟁이 내전을 넘어 국제전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미군이 민간인을 살해한 노근리 사건도 사실이다. 하지만 6·25전쟁이 대리전이라면, 그 전쟁에서 싸운 한국군은 강대국의 용병이고, 한국 정부는 강대국의 앞잡이란 뜻이다. 딱 북한과 중국의 관점이다.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 중국은 항미 원조의 반(反)침략전쟁으로 부른다. 미 제국주의와 싸운 독립 투쟁이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한국은 빈곤과 공포에 떨며, 폭군의 노예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명백한 사실이 왜 그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놀랍게도 프랑스의 한강도 있다. 바로 세기의 철학자 사르트르다. 그만이 아니다. 전후 프랑스 지식인은 대부분 공산주의가 인류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1945년 쾨슬러의 ‘정오의 어둠’ 프랑스어판이 출간되었다. 전향한 러시아 공산주의자 쾨슬러는 이 소설에서 1937년 부하린 재판을 파헤쳤다. 공산주의자에게 개인의 양심과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게 결론이다. 오직 혁명의 미래만이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은 ‘물리적 제거’ 곧 죽음뿐이다. 그렇게 혁명의 괴물이 탄생했다. 그런데도 또 다른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휴머니즘과 공포’에서 ‘진보적 폭력(violence progressive)’을 옹호했다.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을 없애기 위한 폭력,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인간적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 깜깜이 철학을 전복시킨 게 6·25전쟁이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메를로-퐁티는 침묵했고, 마침내 전향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진보적 폭력’의 이름으로 소련을 옹호했다. “반(反)공산주의는 개”라고 극언했다. 6·25전쟁의 성격을 가장 예리하게 이해한 것은 우파 지식인 레이몽 아롱이었다. 그는 1948년에 이미 “히틀러주의와 같이 스탈린주의도 난폭하게 휴머니즘적 전통과 단절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자유 유럽의 아들’로서 옹호했다. 그는 6·25전쟁이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보았다. 소련의 세계 혁명에 대해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을 촉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아롱은 사르트르가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리한 변증법적 모험을 했다”고 조롱했다.
사르트르는 왜 눈먼 봉사가 되었나. ‘지식인의 아편’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아편은 공산주의다. 한강의 아편은 휴머니즘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 고상한 아편은 때로 양심을 부패시키고, 현실에서 큰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와 586의 아편은 ‘닥치고’ 평화주의이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아무리 비싸고 더러운 평화도 이긴 전쟁보다는 낫다”(이재명)고 한다. 국민이 북한군에게 살해당하고 불태워져도 “아무것도 아닌 일”(설훈)이다. 귀순 어부 2명은 강제 송환되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그 휴머니즘의 실상이다. 이제 북한은 전술핵을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종전 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문재인)고 외친다. 문서 몇 장으로 핵도 막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북한이 “소리만 지르면 현금을 대주는 ATM이었다. 이제 남벌(南伐), 즉 적화통일의 대상이 됐다.”(란코프)
6·25전쟁은 공산주의에 대한 인류의 첫 전면적 투쟁이다. 그 전에는 공산주의의 실체가 흐릿했다.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열광했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가면이 벗겨졌다. 한국민은 비로소 ‘자유’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세계도 눈을 떴다. 16국 4만여 유엔군의 피가 한반도의 대지를 적신 까닭이다. ‘자유의 의무’를 위한 숭고한 헌신이었다. “너희가 빚진 것은 없다. 자유 없는 북녘과 세계에 자유를 찾아주고 지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의 의무이다.” 한국전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고, 지난 4월 작고한 윌리엄 빌 웨버(97) 미 육군 대령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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