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떨쳐내야 할 임금 통제의 유혹

오관철 기자 2022. 7.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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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노동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은 소비 위축과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막중하다. 중앙은행은 정확한 경기 진단과 과감한 행동으로 돈줄을 조이면서도, 경기 위축을 불러선 안 되기 때문에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고통을 덜어줘야 하며 핵심은 균형과 공정이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정부에서 인플레 억제책으로 임금 인상을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 간담회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말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날 세종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가 상승하면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해질 거고 그것 때문에 인플레가 다시 일어나는 악순환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임금이 오르면 통화량이 늘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주도 인플레’, ‘임금·물가 스파이럴’(임금 물가 악순환)을 우려하는 듯하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등장한 이론으로 상식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노조의 협상력 약화 등으로 지금은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론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 정부 논리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그간 보여준 경제정책의 편향성 때문이다. 대기업 법인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부자감세를 경제정책 방향에 포함시키면서도 월급쟁이들이 내는 소득세에 대해선 별다른 감세 대책을 내놓지 않았던 정부다.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는데 월급도 못 올리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월급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는 게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 대학 등록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까지 들고나왔으니 인플레 위기대책이 서민층에 전가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임금 인상 억제 발언은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사용자 측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임금 인상 요구가 공동체 이익에 반한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인플레의 통증은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자영업자,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이 더 깊게 느끼기 마련이다. 저소득층이 더 많이 부담하는 역진적 세금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인플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진다. 가계는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소비를 하며 자영업자는 이런 소비로 생계를 유지한다. 인플레 시대라 해서 임금이 제대로 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임금 인상 억제를 말하기에 앞서 인플레 고통이 서민들에게는 최소한으로 덮치도록 해법을 찾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제품 가격에 쉽게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반영할 수 있는 대기업보다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에 더 많은 눈길이 가야 한다. “복합위기가 시작됐다”(경제부총리), “블랙 타이드(검은 파도) 시대”(기재부 1차관)니 하며 위기 국면임을 강조하면서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현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급속한 물가 상승은 예측 가능한 경제행위를 어렵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격한 물가 통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낮은 물가 상승률은 노동자들이 미래에 소득을 올릴 기회를 줄일 수 있다. 긴축적인 재정·금융정책은 노동수요 감축과 실업 증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정부가 도를 넘게 행동할 경우 경제에 위험하고 그만큼 대응 방식이 중요하다.

외신 보도를 보면 미국에서는 고용계약에 물가 상승분을 임금 인상에 자동 연계시키는 ‘생계비 조정’ 규정을 넣는 추세가 다시 생겨나고 있다. 인플레가 심했던 1970년대 나타났다가 유명무실해졌는데 인플레 시대를 맞아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인플레 수당이라 불리는 현금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고유가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았을 때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발언이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입에서 연달아 나왔는데 2022년에도 반복되고 있다. 만약 임금 통제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면 자유시장경제, 민간부문 활력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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