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명의 오션 드림] 에너지 가치사슬의 완성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올해 1분기에만 378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등극했다. 1년 전 같은 시기보다 81% 급증했다. 반대로 동일 업종의 영국 정유회사 BP는 203억 달러라는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다. 정반대 상황을 만들어낸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원유와 가스 시장을 뒤흔든 러시아발 위기에 대한 대응의 차이를 들 수 있겠다.
세계적 규모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키웠다는 사실이 지난 4월 주주총회에서 보고됐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 공표된 의아한 행보였기에, 온실가스 유발 산업에 대한 투자는 세간의 관심을 끌 만했다. 어쨌든 막대한 투자 덕분에 미국의 거대 정유회사 셰브런이 코카콜라를 밀어내고 버크셔의 4대 투자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는 결과도 낳았다. 러시아발 위기로 인한 최악의 에너지 혼란 속에서, 세금 한 푼 안 내며 증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사익만 추구하는 정유업계를 겨누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신(神)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셰브런사다. 지구를 살리려면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상식인데, 부를 축적하는 방법과 인류를 이롭게 하는 방법이 항상 지향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 된 셈이다.
에너지 문제는 인류의 오랜 숙제다. 최초로 불을 사용했던 호모에렉투스 이래로 40만 년이 흘렀지만 인류는 아직도 화석 에너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더는 화석 에너지를 쓰지 말자 하니 에너지가 인류 생존의 근간인 마당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 전쟁이나 국가 간 이권 다툼 등의 돌발적 상황은 에너지 시장을 수시로 흔들고, 범지구적 합의와 무관하게 수익 창출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업들 덕분에 에너지 시장은 항상 카오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지금 상황에 돈을 번 왕서방이 있다면, 곰이 부렸던 재주는 에너지 산업의 팽창이었을까, 아니면 에너지 시장의 교란이었을까. 곰은 또 누구였을까. ‘정제된’ 에너지 사용의 혜택은 누리지도 못하면서 에너지 부족 탓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빈곤 국가들을 왕서방들은 어떤 존재로 인식할까. 답도 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지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는 경제 구조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가 1차 선결조건이라는 생각은 자명해진다.
브렌트유 두바이유 서부텍사스원유(WTI)를 국제유가를 대변하는 3대 원유로 부른다. 그중 두바이유는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가의 기준인데, 실제 두바이가 생산하는 원유량이 세계 원유 생산량의 0.15%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나면 굳이 두바이라는 지명이 원유 브랜드로 통용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싱가포르는 세계 3대 오일 허브다. 300여 개의 석유 관련 다국적기업 아시아본부가 있으니 석유산업의 중심지라 칭할 만하다. 세계 각국 선주들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싱가포르까지 가서 연료를 구매하고 세금까지 내는, 선박 연료유 거래 중심지이기도 하다. 생산기능도 없으면서 ‘에너지 허브’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그 덕에 원유와 석유를 매개 삼아 부럽도록 풍요로운 도시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두바이와 싱가포르는 닮은 점이 많은 ‘항구도시’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물류 허브를 완성한다’는 국가적 어젠다를 1920년대부터 꾸준히 유지해왔다. 세계 최고 환적항만이라는 현재의 위상은 물류 허브를 완성했음을 의미한다. 몰려드는 항만물류를 이용해서 선박용 연료 시장까지 독점했고, 나아가 석유 기반 화학산업까지 시장을 늘려나가는 국가정책 방향이 부럽다. 아·태지역에서의 지정학적 장점에다 원유의 파급력을 연결해 원유 산업 메카를 완성한 두바이의 변신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올바른 정책과 일관성 있는 추진력으로 도시의 부흥을 만들어낸 셈이다.
원유와 석유는 대표적인 화석연료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21세기 최고의 부를 누리는 국가들은 저물어 가는 화석연료 시대를 보며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까. 대체 에너지 후보를 발굴하는 세계의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아생살타(我生殺他)의 결기마저 느껴진다. 다음 세기의 주도권 역시 에너지 선점에 달려 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너지로의 전환은 달라진 연료의 사용법만 바꾸면 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생산-운송-저장-소비로 이어지는 ‘에너지 가치사슬’의 전 단계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사슬 전체를 완성형으로 아우르지 못하면 에너지 종류만 바뀔 뿐 종속은 벗어나지 못한다. 물리적 생산은 없더라도 에너지 시장에서의 지배적 생산자 역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두바이와 싱가포르가 이미 보여줬다. 세계 5대 항만이자 동아시아 최대 산업단지를 품은 부산이 수소 항만 구축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시 브랜드로서의 수소 항만. 아직 누구도 선점하지 못했다. 수소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대상으로 항구도시에서의 에너지 가치사슬 완성을 기대한다. 내친김에, 저렴한 수소를 구매하러 부산으로 몰려드는 세계인의 회동을 꿈꿔본다. 다음 세대들의 교과서에는 부산이 에너지 허브로 표현되면 좋겠다.
이제명 부산대 교수·수소선박기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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