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7] 낮은 곳에서 듣는 소리
습도가 높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면 소리에 집중하기 좋다. 공기 중에 수분이 많아서 소리의 전달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굴절이 늘어 소리가 더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어떤 소리에 집중할지 떠올리면서 설레기도 한다. 피아노 연주곡을 들을까, 무반주 보컬을 들을까, 그러다 실내의 공기가 내는 소리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눈은 감는다. 눈꺼풀을 내리면 소리는 더 커진다.
김용호의 ‘피안(彼岸)’ 연작은 수면에서 바라보는 연잎과 하늘을 보여준다. 작가는 연밭에 누워 있다. 연은 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니 작가는 물속에 누워서 이 사진을 찍었을 게다. 사진은 보는 사람 눈만 사로잡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언제나,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인도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에 누워 그와 같은 소리를 듣는다.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연잎들 사이로 작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찰랑이는 물속에서 나는 평화롭다.”(작가 노트 중)
‘피안’은 저쪽 언덕이라는 말로 생사고해를 건넌 세계를 일컫는다. 번뇌로 고통스러운 이 세상과 다른 저편을 꿈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현실은 해탈을 꿈꾸게만 한다. 그래도 가끔은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또는 무위의 방랑자처럼 세상을 대하고 싶다. 세속을 초월하지는 못해도 번잡스러운 세상을 향한 눈꺼풀을 잠시 내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물속에서 잠시라도 피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다.
진리와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물밑으로 내려가 눕거나 눈을 감고 나를 고립시킬 용기나 여유가 없을 뿐. 작가의 행동과 시선이 닦아준 길은 깔끔하고 반듯해서 어렵지 않게 그곳에 닿을 수 있게 해준다. 예술이 나를 낮은 곳으로 이끌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들을지 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이 곧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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