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민주당의 갈림길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에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를 두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이런 내홍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당권 쟁탈전으로만 보인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국민에게서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선거를 통해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고, 당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 경쟁도 이런 과정의 일부이다. 당권 경쟁을 백안시하거나 정당 간 경쟁 자체를 낮춰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건은 당권 경쟁이나 정당 간 경쟁의 내용과 방식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내홍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당권 경쟁의 내용과 방식 모두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최근 세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기존 지지자 다수가 민주당의 정체성에 실망하거나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당으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을 분명히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8월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권을 잡느냐가 아니라, 어떤 민주당이 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먼저, 박정희 개발체제와 재벌개혁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 정부주도-재벌중심의 박정희 개발체제가 1961년 이후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고, 세계가 주목한 성공 사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관료와 재벌의 기여도 있었고, 여전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희생도 있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한 결과 이런 정부주도-재벌중심의 경제체제가 한계에 봉착했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 재벌은 여전히 중화학공업 기반 기업들과 정보통신 서비스 기업을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으며, 이들 핵심기업과 핵심기업을 지배하는 최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간 출자 구조를 활용해 총수일가가 전체 기업집단을 통제하고 있다. 재벌 세습과정을 좀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핵심 기업들에 대한 통제권을 물려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화학공업 핵심기업을 기반으로 하는 재벌체제는 제조업 고도화와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전환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노동 유연성이 아니라, 지배구조의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재벌 개혁의 적기일 수 있다.
보험업법 관련 현안이 해소되지 않은 삼성그룹,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인 현대차그룹 및 한화그룹 등 개별 재벌들의 속사정을 고려하면, 출자 구조 개혁을 통해 산업전환을 유도할 기회의 창이 열렸다. 이스라엘의 반경제력집중법을 참고해, 출자구조를 2층으로 축소하고 주요 금융그룹과 주요 비금융그룹을 구조적으로 분리하는 경제력 집중 해소 정책을 통해, 소유지배구조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게 재벌들이 스스로 바꿔나가도록 유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은 이런 새로운 출자규제하에서, 삼성생명이 거의 전 금융자산을 삼성전자 주식 보유에 사용하고 있는 지극히 비정상적 상황을 해소하고 동시에 지주회사에 대한 현행 자회사 지분율 규제를 요구하지 않는 2층 출자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 단 이때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부문은 계열분리되어야 한다.
이제 민주당은 현 재벌체제를 여전히 우리 경제 및 사회의 골격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 개혁을 약속할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최순실-박근혜-이재용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 이후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 역시 친재벌 및 박정희 체제 추종 세력이었음이 드러났다.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입장이 분명하게 확립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위선의 탈을 쓰고 기회주의자로 행동한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둘째, 탄소중립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탄소중립으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한국 경제와 사회는 미국의 ‘러스트 벨트’와 같이 쇠퇴할 수 있다. 그러나 탄소중립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 이행 방안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고, 이에 따른 종합적이고 현실성 있는 비용과 편익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경쟁의 성패에 따른 보상이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과정에서 정치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고자 하는 유인을 가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민주당 모두가 몰락의 길로 가는 것임을 자각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민주당이 바로 서야 여당도 바로 서게 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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