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그림찾기 속 숨은 정원 같은 소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6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유령의 마음으로’(임선우), ‘마음에 없는 소리’(김지연)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등단작 <작정기>를 포함해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김지연의 첫 소설집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문학동네신인상 만장일치 당선작이라며 화제를 모으며 등단한 작가답게 김지연은 이후 발표작들에서도 특유의 “나약한 말들”(125쪽)과 “마음에 없는 소리”(159쪽)들로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만들어나간다.
‘작정기’라는 말은 사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다. 그것이 ‘정원을 만드는 법’ 혹은 ‘정원을 만든 기록’이라는 의미의 한자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소설 어디에다 어떻게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김지연의 언어가 곧이곧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귀띔하고 에두르고 변죽을 울리는 ‘나약한 말’이거나 ‘마음에 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는 문학이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은유의 기술이며, 신화나 픽션 창조의 필수 요건이라는 점을 작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김지연의 소설 읽기는 그래서 ‘숨은그림찾기의 숨은 정원을 찾아가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힌트는 “큰 것을 무화시키는 작은 이름들”(100쪽)이며 “원래 통용되는 의미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의미로 조합”(282쪽)되는 장소다. 즉,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꾀하려면 가치나 의미를 사회적 다수가 폭력적으로 독점하는 걸 경계하고, 작고 낯선 것들이 피어날 수 있는 꽃밭과 그것에 대한 온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지연이 만드는 그 작은 은유의 정원엔 특별히 젠더, 부, 성적 소수자 혹은 약자들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들의 절망과 분노와 사랑들로 가꾸어지는 작정기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넘어 다만 오롯하고, 오롯하기에 큰 것 따위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발가벗고 수영하려고 여 제자 진영과 함께 찾는 인적 드문 해변(<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삼천년 된 녹나무 앞에 선 진원과 나(<작정기>),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우는 가로등 불빛 녹아드는 방(<내가 울기 시작할 때)>, 결혼도 섹스도 없이 사랑하는 영지와 은호(<사랑하는 일>)의 정원들은 큰 것에 한눈 파는 이에게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 애틋한 숨은 그림이다.
☞김지연
2018년 단편 ‘작정기’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제12회,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의 첫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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