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록 티셔츠 어때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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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AC/DC 티셔츠 괜찮아요?” 지난 어버이날, 대학생인 큰딸이 헤비메탈 록밴드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선물해주겠다며 물어왔다. 순간 흐뭇했다.
음반 제작자 직업 특성상 내 옷장에는 하나같이 다 검은색인, 각종 록밴드의 굿즈용 티셔츠가 100장 가까이 쌓여 있다. 지천명에도 철들지 않고 헤비메탈 애호가를 자처하는 아비를 위해 고맙게도 ‘취향 저격’ 질문을 해온 것이다. 딸이 내 음악적 관심사를 기억하고, 이를 채워주려 노력했다는 것 자체가 참 감격스럽고 기특했다. 옷장 속에 또 다른 AC/DC 티셔츠들이 이미 있었다한들 뭐 어떠랴.
두 번째 고백. 10년 전, 크리스마스 전야에 가족들끼리 마니또 게임을 하면서 내 이름이 적힌 쪽지가 큰딸에게 향한 걸 알아버렸다. 마침 내 돈 내고 살까 말까 고민하던 재즈 앨범이 있었는데, 내심 딸이 마니또 선물로 사줄까 기대됐다. 그런데 아뿔싸! 딸이 건넨 건 영국 아이돌그룹 원 디렉션 CD였다. 당시 ‘왜 하필 아이돌 CD를!’이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창피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젠 나도 그 팀 출신인 인기 팝가수 해리 스타일스나 제인 말릭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고 큰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최근 나와 같은 4050세대가 새로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을 보고 가슴 뭉클했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봤다. 작은 정서적 자극에도 눈물 날 나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Z세대인 막내 딸이 1986년 작 ‘탑건’ 1편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콘텐츠업계 종사자인 게 무색할 만큼 여느 아빠들처럼 무뚝뚝한 나 역시 딸들에게 살가운 대화를 많이 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탑건’을 주제로 자신 있게 막내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향수에 젖어 눈물 흘리기보단 자식과 함께 대화 나누며 보는 탑건이 훨씬 재밌고 유익했다.
얼마 전 큰 녀석이 다시 물었다. “아빠, 너바나(Nirvana)는 음악계에서 어느 정도의 팀이었어요?” 최근 ‘추앙’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너바나 음반이 나왔다고 했다. 흡족히 딸에게 내 지식을 ‘대방출’했다. 대중문화는 가끔씩 갈라진 세대를 연결할 고마운 기회를 제공한다.
※7월 일사일언은 이준상씨를 비롯하여 박샘 2022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자,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현혜원 카피라이터 겸 서퍼·‘오늘의 파도를 잡아’ 저자,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이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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