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해경의 마지막 기회

이슬비 기자 2022. 7. 1.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1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유족이 17일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4년 봄 진도 팽목항에서 마주한 해양경찰은 죄인 신세였다. 처음엔 구조에 실패했다고 그다음엔 구조 작업이 더디다고,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은 세월호 가족대책본부 천막에 매일같이 불려와 추궁당했다. 그러다 감정이 격해지면 해경은 동네북이 됐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죄송하다고 했다. 팽목항 해경들은 땅만 보고 걸었다. 그때 만난 어느 해경은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겠느냐”고 했다. 해경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해체” 선언과 함께 배신감 비슷한 감정만 남긴 채 잊혔다.

해경을 재평가하게 된 건 2017년 가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단속 현장을 동행 취재하면서였다. 해경은 국민안전처로 흡수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독립 조직으로 부활했다. 전남 가거도 앞바다 서쪽 약 74㎞ 해상, 3000t급 경비함에서 고속단정을 내려 2~3m 파고를 뚫고 나아간다. 생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중국 목선 위로 올라가 쇠꼬챙이를 든 선원을 제압한다. 이 모습을 직접 보고는 함부로 해경을 욕할 수 없었다. 거친 바다에서 목숨 걸고 우리 국민의 생계를 지킨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해경의 필요성을 제대로 절감했다.

이런 국가 조직이 ‘해경왕’이라 불리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한 명에게 사정없이 휘둘렸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해경은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에 대해 ‘자진 월북’으로 규정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정권이 바뀐 뒤인 지난달 16일 “월북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수사 결과를 번복했다. 이 과정에서 친문 의원 보좌관 출신 청와대 행정관이 해경에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고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비극적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세력과 그 세력이 정권을 잡으며 부활한 해경. 결국 그 세력의 압력에 대한민국 공무원까지 ‘월북자’로 몰아간 꼴이 됐다. 2년 만에 뒤집힌 ‘자진 월북’ 발표는 조직의 해체까지 겪었던 해경이 정치적 유불리로 수사를 조작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해경을 두고 작년 ‘해양 경찰의 날’ 축사에서 “우리 정부에서 해경이 부활하고 강인하고 유능한 조직으로 거듭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해경 내부에서는 “그 난리를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차라리 다시 해체하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 “월북 발표를 한 것도 뒤집은 것도 해경인데 같은 조직이 맞나 싶다” “우리가 언제부터 정권에 줄 서는 조직이었느냐”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사태가 커지자 지난 24일 정봉훈 현 해경청장과 지휘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일괄 사표를 냈다. 책임을 지려면 사표가 아니라 월북 발표와 관련해 누구에게서 어떤 압력과 지시가 있었는지 진상을 밝히는 게 순서다. 이번에도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이 “해경 해체하라”고 할 것이다. 해경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 마지막 기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