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의 아트톡] 뮤지컬 세대론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2022. 7.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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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는 우리 뮤지컬의 기점을 1960년대 초로 친다. 이 일반론으로 보면 한국 뮤지컬 역사는 70년쯤 된다. 그러나 한국 뮤지컬이 좀 더 ‘본격적인’ 서막을 연 것은 1990년 무렵부터다. 얼마 전 뮤지컬 배우 최정원과 남경주가 새삼 이 사실을 일깨웠다. 특정 작품의 캐스팅 문제로 대립한 옥주현과 김호영의 논란에 대해 ‘최와 남 듀엣’이 충고의 말을 보태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뮤지컬 1세대’로 규정했다.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어느 분야든 1세대는 그 분야의 문을 연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대단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없다면 섣불리 자신을 그 범주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이 그렇게 불러주면 그야말로 생큐지만, 스스로 나선 1세대 선언은 대단한 용기를 요한다.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다.

영리한 이 전설의 듀엣이 그런 위험을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왜냐면, 남경주와 최정원의 뮤지컬 1세대 주장은 단순 주장을 넘어 사실에 가깝다. 둘은 1세대를 대표한다. 흔히 30년을 한 세대로 치지만, 수많은 스타들이 삽시간에 명멸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 30년은 백년 한 세기와 맞먹는다. 다음은 남경주와 최정원 주연으로 출발한 한국 뮤지컬 30년 약사를 ‘뮤지컬 세대론’으로 풀었다. 이를 10년 주기설로 대입하니 지금은 뮤지컬 4세대에 해당한다.

① 1세대: 남경주와 최정원 듀엣이 개문발차하고 주연으로 활약한 1990년대는 한국 뮤지컬의 실질적 토대가 만들어진 때다. 서울 잠실의 롯데예술극장은 국내 첫 ‘뮤지컬 전문 제작극장’을 표방하고 이 시대의 구심점이 됐다. 그 1기 주역이 두 사람이다. 이 듀엣의 활약으로 뮤지컬은 연극의 하위 장르에서 벗어나 독립 예술로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에이콤과 냉정한 오디션 문화를 정착시킨 삼성영상사업단 또한 1세대의 숨은 주역이다.

② 2세대: 블록버스터 뮤지컬 시대는 2000년 뉴밀레니엄과 함께 왔다. 말로만 듣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 제작으로 LG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였다. 엄격한 외국 원작 제작 시스템으로 국내 생산한 ‘라이선스 뮤지컬’의 첫 성공 사례였다. 뮤지컬은 공연산업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혜경과 김소현, 류정한 등이 신성으로 등극하여 지금도 꾸준히 활약 중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설앤컴퍼니와 신시, 오디 등 전문 제작사 중심 프로듀싱 시스템 정착기다. 영화에서 뮤지컬로 갈아탄 조승우는 <지킬앤하이드>로 팬덤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옥주현도 뮤지컬 <아이다>로 데뷔했다.

③ 3세대: 3세대의 전령사는 김준수다. 지금은 굴지의 제작사로 성장한 신생 EMK가 2010년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의 세종문화회관 초연에서 아이돌스타 김준수를 타이틀롤로 내세웠다. 몇분 만에 전회 완판 신기록을 세웠다. 뮤지컬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끈 10년 주기설을 입증하며 이후 ‘스타 마케팅 시대’를 열었다. 결과적으로 제작비와 관람료 상승 등 압축 성장 과정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외국 뮤지컬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창작 뮤지컬 붐도 일었다.

④ 4세대: 2020년대 초반인 지금은 백화제방(배우), 백가쟁명(제작사) 시대다. 독과점 시장에서 잦은 동반 출연으로 최정원과 남경주 듀엣을 ‘부부’로 착각하던 시대는 추억이 됐다. 김호영처럼 재능과 끼로 똘똘 뭉친 배우들과 얄미울 정도로 셈에 밝은 제작사들이 혈투를 벌이는 전쟁터다. 여기에 열화와 같은 소비자 광팬들은 ‘프로슈머 권력’이 돼 서로 경쟁에 불을 붙이며 시장을 이끈다. 작금의 특정 배우의 캐스팅 개입 여부 논란은 이 와중에서 드러난 과열 현상 중 하나다.

우리나라 공연산업의 전체 매출 중 뮤지컬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타 장르에 비해 인기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연예술 전체 시장 규모라야 아직 1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산 규모로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 유니콘 기업들이 마구 등장하는 마당에 한 분야의 산업 전체 총량이 그만도 못하다면, 답은 분명하다.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것. 사소한 다툼을 넘어 선진 제작시스템 구축에 여전히 매진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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