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주 92시간’이란 거짓 프레임

곽래건 기자 2022. 7.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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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92시간 근무 가능”(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윤석열 정부가 주 최고 92시간 일하는 제도를 시행”(박지현 민주당 전 공동비대위원장), “이론적으로 92시간까지 가능”(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최대 92시간까지 일하자는 정책 방향에 우려”(참여연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관련 브리핑에서 근로시간 제도개선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을 설명하고 있다. 2022.6.23/뉴스1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한 뒤 노동계와 야권, 진보 시민 단체가 줄줄이 우려를 쏟아냈다. 일부 언론도 가세해 ‘주 92시간’ 프레임을 주입하고 있다. 이들 말만 들으면 정말 주 92시간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일부 직장인은 이 프레임에 넘어가 “정부가 ‘야근 지옥’을 만들려 한다”고 반발한다. 그런데 잠깐만 들여다봐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란 걸 알 수 있다. 주말·휴일 빼고 5일 동안 92시간 일하려면 매일 18시간 24분 일해야 한다. 밥을 제대로 먹기도 어렵고, 잠잘 시간도 모자란다.

애초 ‘92시간 선동’은 주 야근 최대 한도인 12시간을 한 달(평균 4.345주) 중 한 주에 몰아서 하는 걸 가정했다. 매일 8시간 근무 5일 40시간에 한 달 야근 최대 한도 12×4.345=52.14시간을 한 주에 다 해 주 92시간이란 주장이다.

‘주 92시간’파(派)들은 그러나 정부가 퇴근 후 다음 출근까지 최소 11시간 쉬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을 빠뜨렸다. 정부는 하루 24시간 중 11시간은 무조건 쉬도록 한 상태에서 주 52시간제 개편 계획을 공개했는데,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르겠으나 그걸 빼고 계산하니 92시간이란 황당한 수치가 나왔다. 더구나 이들은 “고용장관이 ‘11시간 휴식을 검토하겠다’고만 했다”고 공격했지만, 장관은 “11시간 휴식 등을 병행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발언을 왜곡한 셈이다.

하루 11시간을 쉬면 13시간이 남지만 이 중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1시간 30분이다. 근로기준법이 4시간 일할 때마다 30분 휴게 시간을 주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 5일 일하면 최대 57시간 30분을 일하게 된다. “주 7일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일주일에 하루는 쉬도록 하고 있다. 결국 법적으로 주 6일 69시간이 최대다.

실상이 이런데 노동계와 야권, 진보단체, 일부 언론은 여전히 ‘주 92시간’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정부가 “사실이 아니다”면서 어떻게든 설명해보지만 한 번 짜인 프레임은 계속 유포되고 있다. ‘92시간’이란 숫자에서 오는 공포가 과학적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조사한 한국 노동 시간은 연간 1928시간(2021년)이다. 독일(1306시간), 일본(1633시간), 미국(1802시간) 등을 앞서 전 세계 최상위권이다. 과도한 노동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건 맞는다. 그러나 ‘92시간 협박’은 이런 차분한 논의를 차단하려는 거짓 프레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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