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0] 국가의 본분
1945년 패전과 함께 일본 정부는 수백 만에 달하는 재외 일본인을 본국으로 귀환시켜야 하는 난제에 봉착한다. ‘히키아게(引き揚げ)’라 부르는 20년에 걸친 귀환 사업으로 660만명쯤 되는 대상자 중 629만명이 귀환하였으나, 아직도 현지에 남겨진 사람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소식 불명의 미귀환자와, 귀환자들이 귀국 도중에 겪은 시련은 전후 일본 사회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트라우마의 기저에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깔려 있다. 전쟁 끝 혼란 속에서 귀환 사업이 순조롭지 못했던 것에 더하여 적지에 남겨진 국민의 안위 파악과 송환의 국가 본분을 다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 기억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 사례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다.
2002년 최초로 방북한 고이즈미 총리는 방북 의의에 대해 “첫째가 납치 문제 해결, 그다음이 일·북 수교 문제”라고 공언한 바 있다. 국민 보호를 최우선 외교 목표로 삼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지금도 일본의 관련 외교 노력은 집요하고 전방위적이다. 일본을 방문하는 미국 대통령은 납치 피해자 가족을 만나는 일정에 공을 들인다. 납치 문제에 공감을 표하는 것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으로서 미일 관계를 상징하는 시금석의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납치 문제 최우선 외교를 안보 우경화 저의에서 비롯된 외교전으로 폄하하는 시각이 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두고 북한의 엽기적 국가 범죄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한국이 정상 국가인지 의아해하는 시각이 있다. 아무리 남북이 특수 관계라 할지라도, ‘월북이 아니라는 근거를 대라’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정치 공세를 편다는 식의 발언을 보고 있노라면, 국가 본분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였던 세력이 국정을 좌우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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