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8] 야비함과 고상함

유비(劉備)가 초야에 있던 제갈량(諸葛亮)을 세 번 찾아가 제 진영으로 끌어들인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는 퍽 유명하다. 제갈량은 그때를 회고하면서 “돌아가신 황제께서 제 미천함을 따지지 않으시고(先帝不以臣卑鄙)…”라고 적었다.
유비가 세상을 뜬 뒤 북벌(北伐)에 나선 제갈량이 새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담겼다. 여기에 등장하는 비비(卑鄙)라는 단어는 ‘신분이 낮으며[卑], 지식 견해 등이 부족함[鄙]’을 의미했다.
앞 글자는 높고 낮음의 존비(尊卑)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뒤의 ‘비(鄙)’는 정상적인 문물을 갖추지 못한 ‘야만(野蠻)’의 상태를 가리킨다. 본래는 권력의 중추와 일반인들이 사는 성읍(城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지칭했다.
따라서 두 글자를 합친 ‘비비’는 어감이 썩 좋지 않다. 미천한 신분에 지식이나 견해가 얕은 사람을 형용한다. 제갈량이 한껏 자신을 낮춰 적은 표현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현대 중국어 쓰임은 조금 다르다.
성격이나 행동이 천박한 ‘야비(野鄙)’나 ‘비루(鄙陋)’에 가깝다. 그로써 드러내는 도덕적 타락도 의미한다. 형편없는 인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품 등의 소유자도 가리킨다. 이 단어를 써서 중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시가 있다.
베이다오(北島)라는 필명의 시인이 쓴 ‘회답(回答)’이다. 그 첫 구절은 “야비함은 야비한 자의 통행증, 고상함은 고상한 이의 묘지명(卑鄙是卑鄙者的通行證, 高尙是高尙者的墓誌銘)”이다. 타락한 자들의 발호, 의젓한 이의 몰락을 그렸다.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사회를 고발한 시다. 현재의 중국은 그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야비함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고상함은 늘 그렇듯 땅에 묻힐까. 부패한 관치(官治)에 짓눌려 신음하는 민생(民生)을 보면 시인의 절규는 아직 유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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