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연설문 쓰며 글에 대한 겸손함 생겨.. 시는 무게 덜어내는 일"
8년만에 네 번째 시집 출간
고향 강원도 서사로 평화 소망
"문학적 정서로 연설문 틀 피해"
신동호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시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통령 연설문을 쓰며 글에 대한 겸손함이 생겼다”고 했다.
최근 네 번째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를 펴낸 신동호 시인은 30일 본지와 유선인터뷰에서 “예전에는 한 번 시를 쓰면 많이 고치지 않았는데 연설문을 쓰면서 여러번 수정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책은 2014년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이후 8년만에 펴낸 시집이다.
신동호의 시는 서사적 표현이 강하다. 춘천 교동 언덕 위 아지트와 화천버스터미널 등 각 장소에 관한 세밀한 기억이 이야기를 증폭시킨다. 보르헤스의 소설 제목을 빌려온 시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춘천에 생긴 원주통닭집 길모퉁이”에 이어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한다. “가족사와 성장사를 거대한 역사적 시간대에 비끄러맨 신동호 시의 도저한 여정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뜻밖에 사소한 일상의 자리”라는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에 공감이 간다.
신 시인은 “한 사람의 서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현재는 과거의 축적 속에 현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와 ‘너’가 되기까지 어떤 서사가 있었는지 구성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서 근무하는 등 통일운동가로도 활동해왔다. 대학원 시절 북한 책을 남한에서 출판할 수 있도록 저작권 협상을 대행하고, 북쪽 노래들을 남쪽 가수들이 부른 음반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남북 문화교류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인의 이력답게 장시 ‘깔마 꼬레아 여행 가이드북’을 대표작으로 뽑아도 될 듯하다. 2045년 11월 3일 통일된 한반도를 구상하며 쓴 시다. “대중소설 붐”이 일고, “남쪽 출신 작가들은 철학자”가 되고, 노벨문학상 작가도 나왔다는 소식이 읽힌다. “평화는 감염력이 크다”는 말도 인상깊다. ‘깔마’는 스페인어로 ‘평화’, ‘고요’를 뜻한다. 시집 제목의 ‘그림자’는 평양에 두고 온 그림자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신동호의 시에서 대표적인 표현을 꼽으라면 ‘따뜻한’이다. 시 ‘따뜻한 밥상’에서는 “따뜻한은/조금 부족함에 만족한다는 말이다/함께 먹기 위해 기다린다는 말이다”라고 표현하며 고 김근태 전 국회의원을 추모하기도 했다.
연설문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시인은 이제서야 홀가분한 기분이다.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글을 쓰는 일이었으니 큰 압박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무리에 소속되기 위한 절차를 밟았”고, “죽음조차 내 것이 아닌 당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를 잊지는 않았다. 시는 무게를 덜어내는 일이었다. 신 시인은 “연설문은 무게감과 책임감이 강한 글이다. 중요한 글을 쓸 때에는 하루에 20번씩 화장실을 갈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규격화된 연설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려운 시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달할 때에는 문학적 정서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문 전 대통령도 상당히 문학에 밝다”고 말했다.
시인의 고향인 화천과 학창시절을 보냈던 춘천에 대한 시들도 수록됐다. 이를테면 춘천여고 건너편 “혁소 형의 방”과, 봉의동 골목 어귀 “준이 형의 방”은 겨울에도 마음이 “장작처럼” 탄 곳이었다. 물고기에 대한 재기 넘치는 표현 또한 생명력을 안긴다. “똥고기는 지저분한 비늘이 늘 애틋”했고, “파로호의 메기는 물안개를 먹고 산다”고 한다.
신동호의 관심은 여전히 ‘사람’에 있는 듯하다. 시 ‘혁명가들’에서는 “고통받는 것도 백성이요, 깨닫는 것도 백성이요, 뒤집는 것도 백성이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앉을 사람도 백성이요”라며 원주에서 활동했던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과 고 김지하 시인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는다. 명성과는 상관없이 시인의 친구인 ‘꽁치’ 또한 소중한 사람이다. 시인은 “한사람의 소중한 삶이 서로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의 시구가 이같은 마음을 대변한다.
“‘꽁치’는 춘천 중앙시장 생선가게집 아들, 늘 비린내가 났다/(중략)/그해 겨울, 감옥에서 나와 중앙시장에서 꽁치가 구워주는 양미리를 맛봤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삭이질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꽁치’는 그저 웃었다. 잘익었어 먹어봐. 차가운 눈은, 내리는 족족 녹아내렸다(시 ‘양미리’ 중)”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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