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목숨' 요양보호사, 노조 설립하니 '꼼수 폐업'

안명진 2022. 7.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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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요양원에서 일했던 요양보호사 A씨는 지난 1월 '황당한'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A씨가 일했던 울산의 요양원도 지난 4월 구청에 폐업 신고를 한 뒤 종사자 전원을 해고했다.

C씨와 동료들도 노조 결성 이후 '영업장 임대차 계약 만료로 센터를 폐업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C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요양보호사는 파리목숨' '노조 가입했다고 해고'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센터 앞에서 매일 집회를 열며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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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잔반으로 식사·원장 텃밭 일
요양기관 자진 폐업.. '꼼수' 의심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돌봄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해고된 요양보호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돌봄노조는 지난달 26일부터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돌봄노조 제공


울산의 한 요양원에서 일했던 요양보호사 A씨는 지난 1월 ‘황당한’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A씨의 동료가 “일도 잘하는데 왜 해고하느냐”고 묻자 원장은 “나한테 인사를 잘 안해서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요양원에서 근무했던 B씨도 “원장이 식사를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아 어르신들이 먹고 남은 급식을 먹어야 한다. 밥이 안 남으면 굶는 날도 굉장히 많았다”고 토로했다. 원장 소유의 텃밭에서 밭일을 하거나 김치를 담그는데 직원들이 동원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B씨는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월 전국돌봄서비스노조(돌봄노조)에 가입해 분회를 결성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했던 C씨도 원장에게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C씨는 “센터 특성상 어르신들을 댁까지 차로 모셨지만, 사실 이는 요양보호사 업무가 아니다”라며 “업무 중 발생한 교통사고 피해비용도 부담할 뻔 했다”고 말했다. 동료 D씨는 “주방 조리원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엔 요양보호사들이 식사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한숨 쉬었다. 이에 센터 측은 “교통사고 배상 요구는 취소했고, 음식 준비는 (재료를) 간단히 데우는 정도”라고 반박했다. 이들도 지난 4월 돌봄노조에 가입했다.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한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해고된 요양보호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노조 제공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던 요양보호사들이 노조를 결성했다고 해서 현실이 쉽게 바뀌진 않았다. 오히려 요양기관이 스스로 ‘폐업 신고’를 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노조가 결성된 요양기관을 폐업한 뒤 같은 자리에 다른 이름으로 요양원 문을 다시 여는 식이다. 현행법상 요양기관의 설립과 폐업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라 이런 ‘꼼수’가 가능하다.

A씨가 일했던 울산의 요양원도 지난 4월 구청에 폐업 신고를 한 뒤 종사자 전원을 해고했다. 요양원 측은 “운영난 탓에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위장 폐업’ 가능성을 의심한다. 요양원 측이 “석 달 뒤 재입소하게 해주겠다”고 안내했다는 얘기가 어르신과 보호자 사이에서 돌고 있기 때문이다.

C씨와 동료들도 노조 결성 이후 ‘영업장 임대차 계약 만료로 센터를 폐업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센터가 노조원 2명을 해고한 뒤 노조가 반발하자 요양원 측은 “어차피 곧 문을 닫는다”며 이같이 알렸다고 한다. C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요양보호사는 파리목숨’ ‘노조 가입했다고 해고’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센터 앞에서 매일 집회를 열며 항의하고 있다. 전지현 돌봄노조 사무처장은 30일 “노조가 대화하자고만 하면 요양기관은 폐업이란 말부터 꺼낸다”며 “공적 자원이 투입되는 요양기관의 설립·폐업 조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설립 뒤 폐업했다가 같은 자리에서 요양기관이 다시 문을 연 사례도 있다. 경기 성남시의 한 요양병원은 2018년 6월 노조가 생기자 이듬해 1월 폐업했다. 그런데 11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요양원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요양보호사들이 “이렇게 다시 운영하게 놔두면 어떻게 하느냐”고 시청 측에 항의했지만 “법적으로 설립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는 영리법인과 개인도 요양기관을 설립·운영할 수 있게 한 제도의 문제”라며 “우선 보건복지부 ‘노인보건복지사업안내’ 지침에 노동권 보장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설립과 재설립이 반복되는 경우엔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의심되는 만큼 해당 시장에 다시 들어오기 어렵게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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