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바쳐 바흐 연주..1위 기쁘진 않아"

2022. 7. 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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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린 30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이강숙홀.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은 스크랴빈 전주곡 Op.37-1과 스크랴빈 소나타 2번 1악장을 연주했다. 장중한 내면의 힘이 느껴지면서도 외면을 섬세하게 아로새긴 연주였다.

“우승이 기쁘지 않은 건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콩쿠르 1위를 했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는 임윤찬은 첫 소감부터 남달랐다. 배석한 손민수 한예종 교수가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클래식 음악가로서 긍지를 느낀다. 음악의 순수함이 통했고, 많은 사람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고 정리했다.

30일 우승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스크랴빈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연합뉴스]

콩쿠르 2라운드에서 임윤찬은 첫 곡 바흐 ‘음악의 헌정’ 중 리체르카레 연주를 마치고, 스크랴빈 소나타 2번을 연주하기 전 90초간 침묵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거기엔 의미가 있었다. “2라운드 때 바흐에서 영혼을 바치는 느낌으로 연주했다. 그런 고귀한 음악을 연주하고 스크랴빈으로 바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3차 준결선에서 임윤찬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65분간 연주했다. 집중력 있게 고난도 기교를 펼쳐야 하는 곡을 왜 골랐을까. “사람들 머릿속에 이름 자체가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손 교수님은 초절기교라는 게 테크닉뿐 아니라 어려운 기교를 넘어 다시 음악적인 음악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이라고 강조하셨다. 그걸 생각하면서 연습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임윤찬은 시종일관 음악에 대한 진지하고 순수한 열정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결선에서 연주한 베토벤 협주곡 3번은 2019년 윤이상 콩쿠르 우승 때도 연주했던 곡이다. 어릴 적부터 큰 무대를 앞두고 고민할 때 떠오른 곡이라고 했다. “윤이상 콩쿠르나 이번이나 마음가짐은 늘 같았다. 내가 달라져서 음악이 달라진 건 아닌 것 같다. 들으시는 분들이 그렇게 느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보고 피아노를 시작한 ‘조성진 키드’처럼, ‘임윤찬 키드’의 등장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 학생들이 저를 롤 모델로 하면 안 된다. 저보다 훌륭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를 롤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도 즐겨 듣는 코르토, 프리드만, 소프로니츠키,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 얘기다.

“옛 연주가들은 인터넷도 없고 악보와 자신 사이에서 음악을 찾았기에 독창적이었다. 요새는 유튜브 등으로 다른 사람 연주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좋았던 연주를 따라 하게 된다. 잘못된 거다. 옛날 예술가들의 음악 만들기를 본받아야 한다.”

스승 손민수 한예종 교수(오른쪽)에 대해 임윤찬은 “인생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했다. [뉴시스]

13세 때인 2017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손 교수를 처음 만난 임윤찬은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다.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도 피아노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알려주셨고, 예술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가르쳐주셨다”고 했다. 손 교수는 임윤찬을 “늘 음악에 몰두하고 새로운 걸 찾아 나서 믿음을 준 제자”라며 “음악의 힘은 진정한 자유라는 걸 보여준다. 자기 단련과 절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임윤찬은 향후 일정이 빼곡하다. 다음 달 미국에서 연주 투어를 한다. 국내에서는 8월에 만날 수 있다. 10일 롯데콘서트홀 ‘바흐 플러스’에서 바흐 피아노 협주곡, 20일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김선욱 지휘의 KBS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27일에는 평창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 국립심포니와 협연한다.

10월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의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다. 11월에는 아시아 투어를 하고, 12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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