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9세 여성 7% 낙태 경험..위헌결정 후 3년째 '무법' 상태

어환희 2022. 7. 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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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진행한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에서 낙태 경험을 한 여성의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이후 첫 실태조사다.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5~49세 여성 8500명 중 7.1%(606명)가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이번 조사는 임신·출산 평균 연령 상승을 반영해 기존 조사(만 15~44세)보다 대상 연령을 확대했다. 이전 기준인 만 15~44세로 좁혀 보면,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5.2% 수준이다. 2018년 조사 당시 7.6%보다 낮아진 수치다.

보사연에 따르면 만 15~44세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를 나타내는 ‘인공임신중절률’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2020년 낙태 추정 건수는 3만2063건으로, 인공임신중절률은 3.3‰(천분율)이다. 여성 인구 1000명당 3.3건의 낙태가 발생한 셈이다. 4년 전인 2016년(1000명당 6.9건)보다 절반 이상 떨어졌다.

손놓은 정치권 … 대체입법 계속 지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만 2018년 이후 3년간 수치는 소폭 증가했다(2.3‰(2018)→2.7‰(2019)→3.3‰(2020)). 이를 두고 보사연은 당장 낙태를 하는 비율이 늘어났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변수정(보사연 인구정책연구실 연구위원) 박사는 “2018년 이후 2020년까지 소폭 증가한 건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코로나19 등 사회적인 분위기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면서도 “다만 정확한 배경과 영향은 2011년 자료 등 지속적인 추이를 봐야 하는 만큼 현시점에선 감소 추세에서 소폭 변동이 있다는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조사가 헌재 판결 이후 대체 입법 시한이었던 2020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낙태죄가 폐지된 2021년 이후의 상황이 반영된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피임 인지율 및 실천율 증가, 평균 낙태 횟수 감소, 만 15~44세 여성 집단의 인구수 감소 등을 낙태 감소세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낙태 평균 연령은 만 28.5세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50.8%)이 미혼이었다. 낙태의 주된 이유로는 ‘학업·직장 등 사회 활동 지장’(35.5%), ‘고용 불안정 등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4.0%), ‘자녀 계획’(29.0%) 순으로 높게 나왔다.

변 박사는 “낙태 규모는 전반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의 17.2%는 낙태를 하면서 위기 임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3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가 논쟁적 이슈에 손을 놓으면서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 헌재는 당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면서 보완 입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뒀다. 하지만 ‘임신 14주까지 낙태 전면 허용, 15~24주 조건부 허용, 25주부터 처벌’하는 정부의 개정안은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입법 공백의 상황에서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낙태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의 효력이 상실됐다.

정부 “낙태는 기본권, 미국과 상황 달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범죄가 아닌 상황이 됐지만 여전히 낙태는 음지에서 이뤄진다. 이번 조사에서 낙태 당시 여성들이 가장 절실했던 정보는 낙태 비용, 의료기관, 방법·부작용·후유증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는 인터넷 게시물이나 온라인(46.9%)이 가장 많았다. 또 현재 국내에선 낙태약(미프진)을 사용할 수 없지만 낙태 경험자의 7.7%는 약물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낙태 수술을 받았다. 약물을 사용해 낙태한 이들의 경우 2018년 조사보다 확연히 낙태 비용이 증가했다. 만 15~44세 기준으로 ‘10만원 미만’은 줄었고(36.3%→30.0%), ‘50만원 이상’(9.6%→20.0%)은 크게 늘었다. 대부분 낙태약과 동일 성분의 약을 내과에서 편법 처방받거나 해외에서 불법 유통되는 것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정확한 정보로 신체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준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안전한 낙태 환경 조성을 위해 정책적인 요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입법 공백기에 여성건강권 보호를 위해 낙태 관련 의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8월 3만원가량의 낙태 관련 상담 수가를 신설했다. 낙태 전후 주의사항, 부작용 등 주요 정보를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들을 수 있게끔 하자는 취지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낙태권 보장을 폐기하는 결정이 나왔다. 미국의 결정이 국내 낙태 관련 입법 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최 과장은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며 “미국은 수정헌법에서 낙태를 기본권으로 다루느냐의 다툼이고, 한국에선 낙태가 기본권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생명권 보호와의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나가라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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