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 같은 마을 어르신들께..헌집 고쳐 새 집 드립니다"

강은 기자 입력 2022. 6. 30. 2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소득 노인가구 집수리 봉사' 서울 성북구 종암동 청년회
지난 달 28일 서울 성북구 6호선 월곡역 인근에서 ‘종암동 청년회’ 회원들이 집수리 봉사에 쓰이는 각종 도구들을 들고 서 있다. 왼쪽부터 권현, 김희상, 김정국, 이희갑씨. 김창길 기자
1994년 친목 모임으로 출발…“이왕이면 좋은 일 해 보자” 시작
주거 환경 열악한 곳 찾아 벽지·장판 교체, 필수 가전 제공도
집주인에겐 ‘현 세입자 2년 이상 거주’ 약속 받은 후 수리 진행

누런 벽지와 물이 새는 지붕, 장판을 걷어내면 우글대는 바퀴벌레와 지렁이, 숨이 막힐 정도로 코를 찌르는 곰팡내까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해하면서도 “우리 부모님 집”이라고 생각하면 망설일 틈이 없다. 곳곳을 정리하고 고쳐놓은 후 돌아가려 하면 어르신들은 “고맙다”며 덥석 손을 잡아주곤 한다.

20년 넘게 마을 어르신들의 집을 무료로 수리해 온 서울 성북구 ‘종암동 청년회’ 이야기다.

현재 20명 가량이 활동하는 종암동 청년회는 주거 환경이 열악한 어르신들 집을 찾아가 벽지·장판을 교체하고 환풍기 등을 새로 설치해준다. 냉장고나 에어컨처럼 필수 가전제품이 없을 때는 중고를 구해다 주기도 한다. 이들이 오랫동안 대가 없는 봉사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28일 종암동주민센터 2층에서 청년회장 김정국씨(52)와 회원 김희상(44)·권현(48)·이희갑씨(54)를 만났다.

종암동 청년회는 1994년 이 지역에 살던 20~30대 젊은이들이 만든 친목 모임이었다. 이왕이면 좋은 일도 해보자며 동네 곳곳을 청소했다. 골목길을 오가다 보면 이웃들을 자주 보고 어려운 사정도 듣게 됐다. ‘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청년들은 마침 구성원 중에 도배 장판, 전기 수리가 직업인 이들이 많아 ‘집수리 봉사’를 시작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수리한 집이 200곳을 넘는다. 김정국씨는 “세월이 흘러 그 때 청년들은 다 장년이 돼버렸다”며 웃었다.

김희상씨는 7년 전 한 치매 노인 집에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청소를 하다 집 구석구석에서 만원짜리 지폐를 발견했던 날이었다. “이불을 들어 올렸는데 (돈이) 수북한 거예요. 서랍장을 열었는데 거기서도 나오고요. 다 모아봤더니 200만원이 넘었어요. 할머니가 ‘내가 이렇게 돈이 많았어?’하면서 과자 사 먹으라고 만원짜리 한 장을 주셨는데…. 받진 않았지만 그날 일이 오래 기억에 남았죠.”

그는 “집을 고칠 때면 어렸을 때 부르던 ‘두꺼비집’ 동요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마치 ‘청년아, 청년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이런 노랫가락이 들리는 것 같아요.” 이씨도 “어르신들이 새 집 됐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집수리 봉사를 하다 보면 ‘세입자 지킴이’ 역할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종암동 청년회는 집주인에게 ‘현 세입자 2년 이상 거주’ 약속을 받은 후에만 수리를 진행한다. 김 회장은 “집을 깨끗하게 고쳐놨는데 집주인이 세입자 어르신을 내보내고 임대료를 올리려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도와주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거죠. 지금은 꼭 (세입자를 보호하도록) 건물주 서명을 받습니다.”

이웃들과 관계가 두텁고 동네 사정에 밝다 보니 마을 자치에 주축이 되는 역할도 한다. 종암동 청년회 구성원 중에는 주민자치회나 야간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2019년에는 종암동 청년회 주도로 ‘새해맞이 윷놀이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권씨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우리 동네는 여전히 정이 많다”면서 “‘청년회’라는 이름에 맞게 젊은 사람들도 많이 들어와서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