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경제 고문 아기옹 교수 "윤 정부 출발은 긍정적, 다만.."

신수지 기자 2022. 6. 3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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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창조적 파괴' 의 佛 경제석학 아기옹 교수 인터뷰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김의균

지난 2년간 인류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은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 기간 한편에선 일자리가 사라지고, 기업이 줄줄이 파산하고, 공급망이 무너졌지만 다른 한편에선 새롭고 혁신적인 경제 활동과 산업이 꽃을 피웠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산업은 파괴되지만, 이에 적응하며 나타난 신(新)산업이 그 빈자리를 메꾸는 혁신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경제가 발전한다’는 성장 이론이다.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정립한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 행위가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경제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필리프 아기옹(Aghion·66)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는 창조적 파괴를 국가 성장 모델에 접목해 ‘슘페터식 패러다임’을 개척한 석학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역동성을 유지하며 성장하려면 정부가 어떻게 경제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지 평생 연구해왔다. 그래서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성장에 목마를 때 그를 찾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경제 자문을 맡았고, 지난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함께 만든 ‘지속가능한 포용적 회복과 성장’ 위원회에도 고위 자문단으로 참여했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된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민간 주도의 혁신 성장’을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아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판단 아래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해 경제 활력과 역동성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WEEKLY BIZ가 최근 한국에 저서 ‘창조적 파괴의 힘’을 출간한 아기옹 교수를 화상으로 만나 창조적 파괴를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혁신 성장 해법에 대해 물었다.

◇대기업 집중은 창조적 파괴의 적

아기옹 교수는 ‘민간 주도 혁신 성장’이라는 새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두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정부가 동반자 역할을 하되 방해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일부 재벌 또는 대기업에 의존한 성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 위기 이전까지 한국은 산업계와 금융계에 포진한 ‘재벌 기업’의 발전에 의지해 신속하게 성장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재벌 보호를 위해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 및 시장 내 경쟁을 줄이는 데 노력을 기울였죠. 그러나 외환 위기는 일부 재벌의 파산을 불러왔고, 살아남은 재벌도 이전보다 취약해졌습니다. IMF의 강제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에 문호를 개방하고, 반독점 규제도 강화했죠. 이때의 충격 요법은 비재벌 기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했고,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됐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은 성장 모델 자체를 변경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경제 구조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시장 진입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한국의 문제점은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혁신 성장을 위해선 대기업이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경쟁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장 동력으로서 창조적 파괴의 장점을 강조했던 슘페터는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선 비관적이었다. 혁신을 선도한 대기업의 힘이 커지면서 중소기업이 사라지고, 이로 인해 사업가 정신이 소멸하고 관료주의와 기득권이 득세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 전망했다. 반면 아기옹 교수는 자본주의를 적절히 규제하면 창조적 파괴가 지속적이고 공정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본다.

아기옹 교수는 ‘적절한 규제’의 핵심이 시장을 장악하는 이른바 ‘수퍼스타 기업’에 대한 제어라고 본다. 수퍼스타 기업이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창조적 파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적 파괴가 가장 활발한 미국 사회의 생산성이 2000년대 들어 둔화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았다.

“미국의 생산성은 1996~2005년 연평균 2.88% 향상됐으나, 2006~2018년에는 1.1%로 둔화됐습니다. 이는 ‘GAFAM(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과 같은 수퍼스타 기업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퍼스타 기업은 단기적으로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기업의 혁신 의욕을 꺾어 결국 경쟁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수퍼스타 기업이 혁신에 필요한 주요한 특허 등 지식 재산권을 선점하고, 신생 기업들을 선제적으로 인수·합병해 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5대 빅테크는 지난 20년간 경쟁기업 인수·합병에 2000억달러(약 259조원)를 들였다. 10억달러(약 1조2950억원)가 넘는 대형 인수·합병만 32건에 달한다. 아기옹 교수는 각국이 반독점 정책을 디지털 경제에 걸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의 반독점 정책은 아직까지 시장점유율이나 가격에 중점을 두는 정적인 정책에 머물러 있다”며 “인수·합병이 어느 정도로 신진 혁신 기업의 시장 진출을 방해할지, 경쟁사의 연구·개발과 투자를 방해할지, 또 변화하는 시장에서 경쟁을 위협할지 등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법인세 감세, 혁신 유도에 효과적

최근 윤석열 정부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전 정부 때 25%로 높인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로 되돌리기로 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세율 인하도 추진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부자 감세’라는 일각의 비판이 있지만, 아기옹 교수는 “법인세 인하는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 중 하나”라며 “프랑스도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과도한 법인세를 낮췄다”고 했다.

“조세 제도는 경제 성장에 대립적인 두 영향을 미칩니다. 어느 정도 세율에 이르기까지는 국가가 세수를 이용해 공공 투자를 늘리는 긍정적 효과가 앞서지만, 특정 세율을 넘어서는 순간 부정적 영향이 지배적으로 변합니다. 과도한 세금은 혁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순이익을 줄여 기업들의 혁신 의욕을 꺾을 수 있습니다. 다만 법인세 인하 혜택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아기옹 교수는 또 기업의 혁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한국의 R&D 세액공제율은 대기업은 최대 2%,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8%, 25% 수준이다. 아기옹 교수는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혁신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정부의 세제 지원이 중요하다”며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털 등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인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 인구 감소에 대한 해법으로는 ‘이민 활성화’를 꼽았다. “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선별적인 이민 정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기술 분야 전문가인 외국 이민자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나면, 그 이민을 받아들인 국가는 이후 10년 동안 해당 기술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아 상당 수준 발전할 가능성이 25~60%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양한 출신의 고급 인력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의 혁신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노동시장 유연성 높이고, 근로자 보호해야

아기옹 교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려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업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혁신은 기존 경제 활동을 구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일자리를 없애고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을 구직 시장으로 떠밀게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혁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 실업률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근로자 개인의 입장에선 우선 일자리 파괴의 효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창조적 파괴가 노동자 계급을 실직과 사회 계급 격하의 위험으로 내몰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실직 기간을 ‘평안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창조적 파괴 과정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개인에 대한 보호 장치를 강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덴마크식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제도를 제안했다. 플렉시큐리티는 ‘유연성(flexibility)’과 ‘보장(security)’의 합성어로, 노동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노동 시장 모델을 뜻한다. 덴마크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지만, 실직 후 2년간 임금의 90%에 달하는 실업 급여를 제공한다. 또 2200개에 달하는 직업훈련 기관이 재취업을 돕는다.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 제도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근로자 입장에선 소득 감소를 최소화하고, 재교육을 통해 커리어가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 때문에 실직을 겪더라도 그 기간을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일자리의 안정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고용의 안정성’이라는 틀로 옮겨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팬데믹 이후 자동화가 가속화하면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자동화 그 자체는 고용의 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지역 단위가 아니라 공장 단위를 기준으로 한 연구에선 특정 공장 내 자동화 수준이 1% 상승하면 2년 후 일자리는 0.25% 늘어나고, 10년 후에는 0.4% 증가했다는 것이 아기옹 교수의 설명이다.

“자동화에 더 힘쓰는 기업일수록 경쟁 기업보다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서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시 고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를 ‘생산성 효과’라고 부릅니다. 반면 충분히 자동화를 하지 않은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해 일자리를 점점 줄이다가 급기야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지역 단위 연구에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든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동화하지 않은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사라진 일자리 수가 생산을 자동화한 기업이 창출해낸 일자리 수를 넘어서면서 마치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탈세계화는 혁신에 역풍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자 세계 각국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무역기술장벽(TBT) 건수는 3996건으로, 전년(3352건)보다 18.3%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 규제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각국이 도입한 외국인 투자 규제 정책은 50개로 전년(21개)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아기옹 교수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창조적 파괴의 관점에서 부정적”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우리의 성장 이론은 새로운 수출 시장으로 경제 활동을 확장하면 본질적으로 혁신이 촉진된다고 봅니다. 혁신의 결과를 가지고 더 많은 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혁신 의욕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또 새로운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혁신을 촉진하게 됩니다. 반면 보호무역주의는 시장 규모를 제한하고, 혁신의 동기를 줄어들게 만듭니다. 부당하게 경쟁을 하는 국가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하지만, 과도한 관세는 경쟁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내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혁신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기옹 교수는 혁신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서도 미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중국에 부과했던 고율 관세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현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 관세율은 평균 19.3%로, 2018년 미·중 무역 전쟁 전보다 6배 높다. PIIE는 미·중이 서로 고율 관세를 폐지하면 소비자 물가를 1.3%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면서 세계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경기가 급강하해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있는가 하면, 경기가 하강하되 침체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아기옹 교수는 세계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하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종결이 선결 과제라고 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이 전쟁을 러시아와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세계 경제에 미치는 손실과 그로 인한 인류의 고통은 더욱 커질 뿐”이라고 했다.

필리프 아기옹 교수는

-1956년 프랑스 파리 출생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졸업,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주요 경력: 유럽개발은행 이코노미스트,하버드대 교수,

올랑드·마크롱 대통령 경제자문,

세계은행·IMF 지속포용 회복과성장을 위한 고위 자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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