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경계 허문 '로큰롤의 제왕', 스크린으로 부활

권이선 2022. 6.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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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비스' 13일 개봉
무명이던 10대 때부터 40대까지
슈퍼스타의 굴곡진 삶·음악 조명
'신예' 버틀러, 1년 반 넘게 노력 끝에
뇌쇄적 표정·몸짓·창법 등 완벽 재현
'위대한 개츠비' 루어먼 감독 메가폰
"쇼비즈니스의 희생양 된 그의 인생
K팝 비롯한 대중문화도 성찰해야"
시대의 아이콘 엘비스 프레슬리 삶과 음악을 재조명한 영화 ‘엘비스’가 오는 13일 개봉한다. 엘비스와 그의 매니저 톰 파커 대령의 이야기를 다룬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천재적 음악성, 세계적 인기, 그 이면의 고독한 개인사와 비극적 죽음. 세계적 뮤지션 전기를 그린 영화들은 이 같은 서사를 따른다. 불우하게도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도 그런 삶을 살았다. 마치 클리셰처럼 그는 좌절했고, 날개가 꺾인 채 파국에 이르렀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엘비스’는 화려하면서도 굴곡진 엘비스 삶과 음악을 재조명했다.

매끈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덥수룩한 구레나룻, 가슴을 드러낸 실크 셔츠와 걸걸한 저음, 그리고 당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끈적한 퍼포먼스까지. 엘비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적 스타로만 평가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흑백 차별이 여전하고 개인의 욕망이 금기되던 시대, 엘비스는 음악으로 흑백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퍼포먼스 역시 단순한 외설적 동작이 아닌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오히려 그는 ‘골반 엘비스’(Elvis the Pelvis)라는 별칭과 함께 얻은 퇴폐·반항적 이미지와 달리,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어머니를 끔찍이 챙기는 모범 청년이었다. 영화는 소년 엘비스가 흑인 부흥회에 잠입해 온몸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통해 그의 음악적 출발점과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엘비스 매니저인 톰 파커(톰 행크스) 대령은 엘비스가 일으킨 센세이션과 그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백인 보수층 분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내가 엘비스를 죽였다고? 난 그를 만들었지.” 파커 대령은 영화 속 대사처럼 엘비스에게서 ‘돈 냄새’를 맡고 그를 쇼비즈니스 세계로 이끌었다. 파커 대령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트럭을 운전하며 어머니에게 핑크 캐딜락을 선물하겠다는 꿈을 꾸던 무명 가수 엘비스를 로큰롤 황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도박중독이던 파커 대령은 수십년간 수입 절반을 떼어 가고, 모범적 청년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엘비스를 반강제로 군대에 보내는가 하면 그의 음악적 색채를 흩트려놓는다. 관계가 틀어지자 수백만 달러 비용을 청구하기도 한다. 영화는 독특하게도 은인이자 악인인 파커 대령 시선으로 엘비스의 삶을 따라간다.
10대 무명 가수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시기인 40대까지 엘비스의 20여년 세월을 담아낸 신예 오스틴 버틀러 연기가 인상적이다. 조연과 단역을 거쳐 대규모 상업 영화 첫 주연을 꿰찬 버틀러는 1년 반 넘게 갈고닦은 끝에 엘비스 특유의 우울함이 깃든 눈매와 뇌쇄적 표정, 격렬한 몸짓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창법까지 똑같아 엘비스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가 처음 영화를 보고 버틀러 목소리를 자기 아버지 목소리로 착각했을 정도. 버틀러는 최근 화상으로 우리나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음악은 엘비스 DNA나 마찬가지다. 엘비스가 관객에게 말을 걸길 원했다. 엘비스 목소리를 그대로 닮기 위해 노력했다”며 “영화에서 엘비스 데뷔 초기인 1950년대 노래들은 100% 제 목소리”라고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 ‘물랑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 등 화려한 영상미와 감각적인 음악으로 유명한 배즈 루어먼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아 지난달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12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감독은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화면 분할과 과감한 만화 장면 삽입을 통해 강렬한 영상미를 선보였다. 특히 감독의 주특기인 음악 연출을 십분 발휘해 엘비스 원곡과 리메이크곡, 흑인 음악을 적절히 버무렸다. ‘하운드 독’(Hound Dog), ‘트러블’(Trouble),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Can’t Help Falling in Love) 등을 영리하게 배치했다.

루어먼 감독은 쇼비즈니스 희생양으로 그려지는 엘비스 모습은 오늘날 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산업에도 많은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톰 파커는 어린 엘비스를 보며 역사상 첫 번째 아이돌을 만들었습니다. 비즈니스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으면 아티스트가 무너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 문화계 관계자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매니지먼트가 아티스트 운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비즈니스만큼 아티스트의 정신적 건강도 중요합니다. 이를 조율하지 못하면, 정말 파괴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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