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상 두번째 대법원 판결 취소..'한정위헌' 갈등 증폭되나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는 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를 따르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취소했다.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취소한 것은 사상 두 번째다. 법조계에선 한정위헌 효력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헌재는 30일 A씨가 “헌법소원심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이 조항 본문 ‘법원의 재판’ 중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모든 법원의 재판 결과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것은 안 되지만, 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은 법원의 판결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2003년 제주도 통합영향평가 심의위원으로 위촉됐는데, 2006∼2007년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A씨는 “뇌물죄의 처벌 대상은 공무원인데 제주특별법을 근거로 설치된 위원회의 위촉위원을 공무원에 포함시키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A씨의 유죄가 확정된 이후인 2012년 “형법 129조 1항의 ‘공무원’에 제주특별법상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중 위촉위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며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한정위헌이란 법률 조항 전체를 위헌이라고 보지 않고, 법 조항은 그대로 둔 채 “법원이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는 형식이고, 법률의 해석·적용에 관한 법원의 권한을 침해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헌재는 한정위헌도 효력이 있기 때문에 법원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A씨는 한정위헌 결정에 따라 2013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8년간 심리한 끝에 “2012년 (A씨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했고, 이는 형벌 조항의 일부가 헌법에 위반돼 무효라는 일부위헌 결정으로 법원에 기속력(구속력)이 있다”며 “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은 청구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해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취소한 것은 1997년 이길범 전 국회의원이 관련된 소득세법 사건 이후 두 번째다.
헌재는 또 “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하고 있다”며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재가 법률의 위헌성 심사를 하면서 합헌적 법률 해석을 하고 그 결과로 이뤄지는 한정위헌 결정도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에 해당한다”며 한정위헌에 대한 효력을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A씨가 헌재 결정을 갖고 법원에 다시 재심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법원은 안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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