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를 본다는 것

한겨레 2022. 6. 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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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올라퍼 엘리아슨의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 조명등 하나를 중심으로 5개의 정다면체들을 유리로 겹겹이 싸서 수많은 각을 내부에 품은 입체를 만들었다. 광원은 하나지만 입체는 보석처럼 다각도에서 빛을 낸다. 피케이엠 갤러리 제공

[크리틱]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자아 연출의 사회학>을 저술한 어빙 고프먼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공연에 빗대면서 배우도 아니고 관객도 아닌,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그 자리에 멀쩡히 있어도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하인이란다. 하인을 앞에 세워두고 주인마님은 태연히 목욕을 마치고 벗은 몸의 물기를 닦아낸다. 마님의 의식 속에 하인은 사람으로 감지되지 않는 셈이다.

직업상 아무것도 보지 않은 듯 행동하며,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배경 같은 사람이 있다. 사장님을 뒷자리에 태운 운전기사, 재판을 기록하는 속기사, 인기 가수를 보호하는 경호원 등이다. 만약 이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인공처럼 자기 존재를 과시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현실이라면 그들은 업무상 전문성과 평판을 잃어버리겠지만, 영화나 드라마라면 색다르다는 이유로 주목받을 수도 있다.

미술 분야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에 초점을 맞추는 전시들이 새로운 추세인데, 마침 <올라퍼 엘리아슨: 새로운 사각지대 안쪽에서>라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피케이엠(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03년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천장에 커다란 인공태양을 띄워 유명해진 덴마크 출신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1967년생)의 개인전이다.

제목에서 ‘사각지대’(blind spots)는, 엘리아슨이 언급한 단어로, 하인과 마님의 예처럼 우리는 특정한 부분에서 장님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하인은 마님을 보고도 보지 못한 것이고, 마님은 하인이 있는 걸 알면서도 모르니, 둘은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 아닐까. 만일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피하거나 얼굴이 빨개진다면, 각자 상대의 시계(視界)를 침범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계는 그리 완전하지 않다. 눈은 빛이 과하게 강하거나 반대로 주변이 칠흑 같을 때 사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움직이는 물건이나 반복되는 무늬를 보면 착시를 일으킨다. 무언가에 심취하면 그것만 볼 뿐, 나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눈이 멀면 맹목적으로 한 사람만을 바라보지만, 그렇게 몰입한다고 해서 상대 혹은 자신을 샅샅이 잘 안다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사각지대 없는 사랑은, 다소 비현실적일 수는 있지만, 혹시 폴리아모리(polyamory)가 아닐까. 폴리아모리는 일대일의 독점적 사랑이 아닌, 비독점적 다자 연애를 뜻한다.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입체 작품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에서 보여주듯, 엘리아슨은 폴리아모리의 개념을 ‘플라톤의 입체’로 구현했다. 플라톤은 어느 꼭짓점에서 봐도 모양이 같은 정다면체는 5개 있다고 주장했는데, 엘리아슨은 조명등 하나를 중심으로 5개의 정다면체들을 유리로 겹겹이 싸서 수많은 각을 내부에 품은 입체를 탄생시켰다.

유리 입체 안에 든 조명은 한 방향을 집중으로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다. 유리가 다섯겹 겹쳐졌기 때문에, 입체는 보석처럼 다각도에서 빛을 낸다. 아무리 봐도 이 보석의 광원이 하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하나의 빛이 놀랍게도 수백개의 빛으로 조각조각 황홀하게 퍼져나간다. 하나가 쪼개어져도 빛남은 감소하지 않고 증식된다.

예술은 보는 것에 관한 것이지만, 볼 수 없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고 기존의 좁다란 시계에 갇혀 사는 우리를 일깨우기도 한다. 내가 항상 보고 있는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서 본다는 것은 세상의 구석구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평소에 알던 주변의 사물을 특별하게 바라보게 하고, 보이지 않던 새로운 존재를 불현듯 의식하게 하고, 그래서 불확실한 눈으로나마 세상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대부분 그냥 봐도 일단 아름답고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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