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은 '프롬프터'를 위한 헌사..연극 '소프루'[이 공연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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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있던 프롬프터가 빛을 받고 모습을 드러냈다.
44년간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속삭여줬다.
포르투갈어로 '숨', '호흡'을 뜻하는 '소프루(Sopro)'는 대사나 동작을 잊은 배우에게 이를 일러주는 프롬프터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속삭이는 대사에 따라 배우들은 프롬프터가 되고, 예술감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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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어둠 속에 있던 프롬프터가 빛을 받고 모습을 드러냈다. 44년간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속삭여줬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7~19일 열린 연극 '소프루'는 실제 포르투갈의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에서 40년 넘게 프롬프터로 일해온 크리스티나 비달이 올라 그 삶의 진정성을 고스란히 전했다.
포르투갈어로 '숨', '호흡'을 뜻하는 '소프루(Sopro)'는 대사나 동작을 잊은 배우에게 이를 일러주는 프롬프터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대사를 잊어버려 그 순간 멈출 위기에 놓인 배우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과 예술을 예찬하는 이 작품은 프롬프터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이에 대한 헌정이다.
객석까지 불이 켜진 상태로 무대에 한 사람이 나와 조용 조용 거닌다. 작은 나무 한 그루와 소파 그리고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무대는 어딘가 삭막한 느낌도 든다. 관객들이 숨죽여 보고 있노라면, 배우들이 한 명씩 앞쪽으로 등장한다. 무대를 거닐던 이는 그들 뒤편을 오가며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읊조린다.
속삭이는 대사에 따라 배우들은 프롬프터가 되고, 예술감독이 된다. 프롬프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자는 예술감독 이야기에 한사코 사양한다. 새하얀 팔을 내밀며 자신은 무대 뒤 그림자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객에게 자신이 박수를 받는 순간, 무대 위 배우가 빛나지 못한 것이며 자신의 일은 실패라고 말한다.
설득을 거쳐 이 연극이 만들어지기까지 두 사람의 대화를 풀어내면서, 프롬프터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대에 겨우 손가락 끝만 맞닿은 채 프롬프터 박스에서 처음 연극을 본 다섯 살 꼬마 비달. 실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된 허구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20살이 넘어 프롬프터가 된 순간, 배우들의 뒷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삶,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예술감독과의 추억 등이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진다.
웃음과 감동도 동시에 선사한다. 프롬프터에게 닥치는 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유머스럽게 구현된다. 한쪽 귀가 좋지 않았던 배우, 대본을 마음대로 바꾸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배우 등 갖가지 돌발상황이 벌어진다.
무대에 선다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엔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었던 짐을 털어놓는다. 배우의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대사를 알려줘야 하는 임무를 잊어버렸던 순간. 단 7행뿐이었다. 비달은 그 문장들을 소리내 읽는다. 그의 목소리가 이곳에서 처음 밖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퇴장하는 그의 등 뒤로 텅 빈 무대엔 찡한 먹먹함이 감돌았다.
한국에선 현재 찾아볼 수 없는 프롬프터는 전 세계적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라지는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존재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프롬프터를 무대 위로 끄집어낸 이 극은, 프롬프터만의 이야기가 아닌 잊혀가는 존재들을 돌아보게 한다.
7월말 은퇴를 예정하고 있는 비달은 극장의 예산 등 문제로 프롬프터가 줄어드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동시에 깊은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8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희생도 따랐지만 이 직업을 사랑해요. 극장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 없이 일할 수 없어요. 특히 연극은 모두의 애정이 필요하고, 그래서 44년을 일할 수 있었죠. 이 연극은 잊혀져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에요. 극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오마주죠. 사회도 마찬가지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그림자 속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요."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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