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마르코스, 독재자 아니었다?..필리핀 정치 왜곡한 가짜뉴스

이서영 기자 2022. 6. 30. 17: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르코스 미화'..SNS통해 과거 모르는 젊은이들에 홍보
전문가 "필리핀 가짜뉴스 대선, 브라질·미국 선거 영향 줄 수도"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당선인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시위.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서영 기자

(마닐라=뉴스1) 이서영 기자 = 국민 60% 가량이 '독재자'를 위대하다고 믿는 곳이 있다. 30일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된 필리핀 얘기다.

이날 정오에 취임한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지지자들은 모두 그의 선친은 독재자가 아니라 '위대한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필리핀 대선을 뒤흔든 '가짜뉴스' 탓이다.

이날 취임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의 아버지는 국제사회에서 '독재자'로 낙인 찍힌 인물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20년 집권 동안 절반을 계엄령을 선포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으며 국고를 축재해 호사를 누렸다.

당시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가 800여 개 가방, 15벌의 밍크코트, 3000 켤레 구두 컬렉션을 쌓아두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유명한 조롱거리다.

또 계엄령 선포 기간 동안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 수 천명이 투옥되거나 죽어 없어지는 경우가 빈발했다. 그러나 현재 필리핀에는 그런 '독재자'에게 '위대하다'는 표현을 쓰는 시민들이 다수다.

취임식이 치러진 수도 마닐라의 국립박물관 인근은 출입이 통제됐음에도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두 BBM(봉봉 대통령을 지칭하는 키워드) 티셔츠를 입고 국기를 흔들며 '봉봉 만세'를 외쳤다.

그들에게 봉봉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그의 아버지가 위대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말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눈초리는 덤이었다.

봉봉을 반대하는 40%는 왜 그런 것인지 묻자 "온라인에 퍼진 잘못된 정보에 현혹된 것"이라는 답이 이어졌다. 그리곤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의 정보가 '진짜 뉴스'라고 강조했다.

주어진 정보에 따르면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이미 부유한 인물이었기에 국고를 부정으로 빼돌릴 이유가 없었다. 또 시민들을 사랑했던 진정한 '리더'로 수 많은 도로를 건설했고 국민에게 이로운 정책만을 펼친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1986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몰아낸 '피플 파워 혁명'을 펼친 이들은 이상한 사상을 품은 사람들이며 그를 몰아낸 이후 집권한 야권 세력이 오히려 국가 예산을 탕진해 부채가 늘었다고 열거돼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정보가 꽤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는 '가짜뉴스'라는 점이다. 실제로는 1962년 약 3억6000만 달러였던 필리핀 부채는 1986년 283억 달러가 돼 있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20년 폭정 및 국고 탕진으로 80배가 넘는 부채가 생긴 것.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측에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서다. 정치권에서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활용한 셈.

AFP통신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마르코스 선거캠프는 필리핀 젊은 유권자들이 '마르코스 시대'의 암울한 과거를 알지 못한다는 점을 파고들어 SNS에 가짜뉴스를 쏟아냈다.

이를테면 마르코스의 독재는 폭력적이고 부패한 시대가 아닌 '황금 시대'로 묘사했고 마르코스 홈페이지에는 아버지 집권 동안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부유했다고 홍보했다. 실상은 마르코스 집권 당시 필리핀 경제 순위는 아시아 5위 수준이었고, 집권 이후에는 6위로 떨어졌다.

마르코스 주니어 선거캠프는 이 같은 가짜뉴스를 바로잡을 수도 없도록 했다. 대부분의 언론 인터뷰 요청은 거부했고 기자들의 질문은 싹 다 무시했다.

문제는 필리핀의 가짜뉴스로 인한 '독재정권 시즌2 가 필리핀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짜뉴스 폐해를 지적하며 "이는 필리핀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 11월 미국 중간 선거에도 가짜뉴스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것.

레사는 국제사회의 또 다른 '독재' 혹은 '스트롱맨' 리더십의 탄생이라 평가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과 군부 시절로 회귀하게끔 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의 시작점에도 2016년 필리핀 선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제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미 필리핀은 새 시대가 될 것인지 혹은 독재 시대2가 될지 모를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이번에도 가짜뉴스는 SNS를 타고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갔다. 앞으로 예정된 국제 사회의 선거들이라도 가짜뉴스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필리핀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진짜뉴스'가 '가짜뉴스'로 맹비난 받고 '가짜뉴스'가 추앙받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언론과 SNS, 정부는 물론 수용자 개개인의 '비판적 읽기'가 될 수 있도록 모두의 힘이 필요한 때다.

seol@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