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오판해도 괜찮아' 법관 면책특권, 위헌 여부 판단받는다

허진무 기자 입력 2022. 6. 30. 17:47 수정 2022. 6. 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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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김영민 기자

판사가 잘못 판결해도 위법 부당한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 ‘법관 면책특권’이 위헌인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됐다. 판사 스스로 판사의 특권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의심해 헌재로 사건을 넘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서영효 부장판사는 전상화 변호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30일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전 변호사는 법관의 재판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가중 요건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법관 면책특권’인 이러한 가중 요건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대법원 판례가 제시하고 있다.

헌법 제29조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판사의 경우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피해자가 재판의 ‘위법 부당한 목적’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전 변호사는 2017년 11월 한 건물명도 소송에서 패소했다. 상가임대차법상 ‘3기 이상’ 월세를 연체해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도 당시 재판부가 ‘2기 이상’ 연체했으므로 계약 해지가 적법하다며 잘못 판결했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는 잘못된 판결에 대해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1~3심 법원 모두 “위법 부당한 목적을 갖고 재판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 변호사는 판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불법행위라며 두 번째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판사의 재판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여부를 판단할 때 ‘위법 부당한 목적’이 아니라 다른 공무원들과 똑같이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만 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영효 부장판사는 전 변호사의 두 번째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심리하면서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가배상책임 인정요건을 모든 공무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데도 법관에게만 가중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법관 개인이 아닌 국가의 배상 책임 자체마저 원천 배제시켜 정당성과 균형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서 부장판사는 또 대법원이 수차례 판례에서 ‘위법 부당한 목적’ 등의 요건을 일관되게 제시하면서 법률 조항의 의미가 구체화됐기 때문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의 적법성을 갖췄다고 했다.

서 부장판사는 이날 결정문에 “국민으로부터 사법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신분보장 외에 특권적 지위를 창설하지 말고 그러한 지위를 과감하게 내려놓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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