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새의 선물', 다자이 '인간 실격' 100쇄 영예 안다

김유태 2022. 6. 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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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힘 보여준 스테디셀러
12세 소녀 냉소 담은 '새의 선물'
1995년 출간 후 27년만에 대기록
타락한 심리 조명한 '인간 실격'
민음사판 1종만으로 100쇄 찍어
한강·손원평·구병모·조남주 등
여성 작가들 강세 두드러져
300쇄 돌파한 걸작 '난쏘공'
조정래 '태백산맥' 곧 300쇄
책은 정신의 탕약이다. 사유의 물줄기를 곱게 우려낸 마음이 육신을 정화시키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 고전(古典)의 조건으로는 언어의 완전성, 정신의 원숙함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고전은 양피지에 깃털로 쓰인 먼 옛날의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있는 동시대 작품일지도 모른다. 현세보다 후대에 더 많은 독자를 만날 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 한국 문학출판시장에서 '100쇄 영예'를 거머쥔 소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우선 '100쇄'란 책을 인쇄기에 100번 걸었다는 뜻이다. 문학이 읽히지 않는 요즘, 한국과 일본 소설 두 편이 인쇄기에 100번 걸린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주인공이다.

12세 소녀 진희의 냉소와 위악의 시선을 담은 '새의 선물'은 1995년 출간 후 27년 만에 100쇄를 찍었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는 문장은 지금도 회자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란 글로 열리는 '인간 실격'은 1948년 일본 근대문학 작품이다. 쇠미하고 타락한(데카당스 문학) 인간 심리를 조명했다. 국내에만 판본이 20종 이상이지만 민음사판 1종만으로 100쇄를 걸었다.

한국 최장기 스테디셀러의 이정표가 된 작품은 최인훈의 1960년작 '광장'이 꼽힌다.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현재 '광장'은 62년간 225쇄를 찍었다. 북녘의 광장, 남녘의 밀실을 거부하고, 타고르호 위에서 크레파스보다 진하고 육중한 바다를 택한 명준의 명멸을 다룬다. '남은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스스로 풀지 않으면 안 될 숙제'라는 명문이 담긴 이 작품은 한국인이 가장 추앙하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쇄'의 많고 적음을 기준 삼을 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300쇄를 넘긴 대작이다. 강제철거 후 노동자가 된 가족의 일상을 통해 한국사회 그늘을 조명했다. 1978년 초판을 찍은 뒤 40년 넘게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도 146쇄를 찍어 여전히 살아숨쉬고, 김훈 '칼의 노래' '남한산성'도 오래전에 100쇄를 돌파했다.

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은 한 작가로부터 잉태된 책으로는 최고의 운명을 걷는 중이다. '아리랑' '한강'은 진즉에 100쇄를 넘겼고, '태백산맥'은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엔 300쇄가 유력하다. '정글만리'도 100쇄를 넘겼다. 아이의 눈을 통해 이데올로기 비극을 조명한 윤흥길 '장마'는 초판 인쇄 기록이 불명확함에도 2판 38쇄, 3판 43쇄를 찍은 바 있어 능히 100쇄를 넘겼으리라 출판계는 추정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선 굵은 남성들의 원고지에서 출발한 반면, 21세기 들어 100쇄 소설은 여성들의 웅숭깊고 세밀한 시선에서 나왔다.

식물이 되려는 한 여성의 정신성을 묘사한 한강의 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100쇄·100만부를 넘겼다. '소년이 온다'도 100쇄를 찍었다.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는 200쇄·200만부, 손원평 '아몬드'도 200쇄·100만부를 넘겼다.

음험한 물 아래 마을을 통해 인간의 뒤집힌 선과 악을 고민케 하는 정유정 '7년의 밤'도 100쇄를 넘겼다. 현대 여성의 자리를 묻는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은 130만부, 꿈을 사고파는 상점이란 독특한 설정으로 텀블벅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될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도 100만부가 판매됐다.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김려령 '완득이'도 100쇄를 넘기며 스테디셀러의 위상을 굳혔다.

좋은 책을 기억하려는 마음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라고 말한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이상이 발생한 건 내가 아니라 이 세계다'라는 문장으로 압축되는 무라카미 하루키 '1Q84'도 100쇄 고지를 돌파하며 우리 시대 고전의 지위를 확정 지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이미 100만부를 넘겨 사랑 받지만 이 풍성한 질주가 언제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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