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창원시의회 김종대 의장 "지방의원 머슴의식 가져야"
"91년 지방의회 부활 후 3선, 마산시장 출마 후 다시 3선으로 통합 6선"
"YMCA 활동하다 강삼재 국회의원 권유로 정계 입문…낙동강 페놀사태 활동 가장 기억에 남아"
"장애인으로서 소명의식 갖고 활동…신앙과 와이프의 헌신적 내조로 여기까지 와"
"지방자치는 미진한 부분 많지만, 국민의 민도가 많이 높아져 변화될 수 있는 기반은 조성돼"
"정당공천제로 지방의원 중앙정치에 예속…지방정치를 공천 볼모로"
"유권자가 주인이라는 머슴의식 있어야…의정활동에 전문성 꼭 필요"
"은퇴 후 지방자치제의 이해 넓히고, 의정활동의 길잡이가 되는 책을 쓸 계획"
■ 제작 : 윤승훈 PD, 이윤상 아나운서
■ 진행 : 이윤상 아나운서
■ 대담 : 김종대 의장 (창원시의회)
◇이윤상> 1991년 1대 마산시의원으로 시작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지역 기초의회 최장수 의원을 지낸 원로정치인이 6월 30일 자로 정계를 은퇴합니다. 창원시의회 김종대 의장인데요. 지역 정치의 산증인으로,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고 우리 지역 정치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의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종대> 안녕하세요.
◇이윤상> 은퇴까지 며칠 안 남았네요.
◆김종대> 백수가 되는 거죠. 하하.
◇이윤상> 어떤 느낌이 드세요?
◆김종대> 좀 뭐라고 그럴까 아쉬운 점도 많이 있고요. 아쉬운 점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있는데 그만둔다는 것이. 사실 제도권에서 물러난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기도 하고 또 그에 따른 역할과 기능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그러나 제가 열심히 했던 것처럼 후임자들도 또 열심히 할 것이기 때문에 큰 여한은 없다고 봅니다.
◇이윤상> 이번 지방 선거를 빼고 보면 경남 기초의원 중에서는 최다선인 6선 의원이셨어요. 1991년 정치 입문 연도로 보면 거의 8, 9선도 가능했던 기간인데요.
◆김종대> 1991년도 지방의회가 새로 부활한 그해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면 8선이 됩니다. 올해 선거했으니까 9선 들어가는데 저 같은 경우는 마산시의회에서 3선하고 2002년도에 월드컵 하는 해에 마산시장으로 출마했었거든요. 출마해서 낙선하고 두 번을 쉬었습니다. 쉬고 다시 2010년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되면서 그때 통합 창원시 의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3선을 해서 통합 6선이 되는 거지요.
◇이윤상> 처음에 정치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김종대> 그때는 사실상 제가 1975년도부터 청년 때부터 YMCA 운동을 하게 됐었어요. YMCA 운동은 여러 그룹 클럽들이 있는데 제가 속해 있던 곳은 이념 클럽이기도 하고 봉사 클럽이기도 하고 그런 클럽에 소속돼서 활동했었는데 그래서 사회적 약자라든지 그리고 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리고 그때는 한동안 민주화 운동이 굉장히 불일 듯 일어났던 그런 때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관심이 참 많았었는데 그때 지역 국회의원이 강삼재 의원이라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시의원을 해보라고 '그 시의원이 뭐 하는 거요?' 그랬더니 '지방 국회의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윤상> 지방의 국회의원이다.
◆김종대> 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안 그래도 YMCA 활동을 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고심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역 국회의원이라면 입법 활동도 할 수 있겠고, 또 권한이 생기니까 사회적 약자들이나 내가 가진 관심 분야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해보자고 그래서 지방의회 의원이 됐었는데 제가 볼 때는 그때 나이로 38살인가 됐었거든요. 그러면 좀 이른 편이었었어요. 사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오는데 하여튼 간에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습니다.
◇이윤상> 그때 그 서른여덟의 김종대가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젊은 혈기로 뛰어든 거잖아요. 당시 했던 활동 중 어떤 활동이 기억에 남아요?
◆김종대> 그때 우리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민주화 운동이었죠.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잘못된 운영이라든지 또 역사에 대한 왜곡 이런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바로잡겠다고 하는 청년으로서의 어떤 패기로 했었는데 그것은 제가 지방의회에서 다루기는 힘든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관심 가졌던 부분 같은 경우는 소외된 계층이나 그리고 또 실제로 생활 속에 풀뿌리 민주주의로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소위 지역의 문제들에 관심이 많았었어요. 제가 1991년도 4월 15일인가 개원했을 겁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그때 우리가 선거운동을 한참 하는 동안에 낙동강 수계에 두산전자가 페놀을 무단 방류했어요. 그래서 대구 사람들이나 우리 지역 사람들이 그걸로 인해서 매우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게 됐어요. 제가 지방의회에 들어가서 첫 조사 특별위원회 페놀 피해 조사 특별위원회도 만들고 그랬어요. 그때는 환경부가 없었고 환경청이 있었어요. 시민단체들하고 같이 삭발도 하고 100일 동안 다니면서 하고 시민운동도 그때 한참 일어나는 그런 분위기였고 환경운동도 마찬가지로 최근에 얼마 전에 들었을 때 그러니까 환경부에서 그걸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지역에서 그런 운동들이 일어난 것이 환경부로 승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윤상> 그 당시 두산전자 페놀 유출 사건이 있었을 때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일으켜서 이만큼 화제가 되고 상당한 역할을 했군요.
◆김종대> 맞습니다.
◇이윤상> 그렇게 마산시의원 활동을 하시다가 마산시장에도 도전하셨는데 그 당시에 좀 잘 안 됐어요?
◆김종대> 맞습니다. 안 될 줄 알고 있었죠. 왜냐하면 그때 우리 지역에서 갖고 있는 어떤 정치색은 매우 보수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그때 김영삼 정치인이 3당 통합을 통해서 자기가 가진 입지를 넓히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원래 마산은 야도라고 그랬었는데 그런 정치인들의 행보에 의해서 우리가 보수화됐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마산시장으로 나서게 된 것은, 계속 활동을 해 보니까 의회가 가진 권한이 너무 적더라고요. 단체장이 가진 권한이 예산의 편성권이나 인사권이나 그리고 또 집행의 권한 모든 것이 단체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지방의회는 들러리 지금도 특별히 나아진 것도 없습니다만 지금도요. 그때 그런 분위기였었어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실효성 있는 어떤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단체장을 해봐야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2000년도에 시민 NGO 단체들이 낙천, 낙선 운동을 했어요. 국회의원 14대 때 2년 후에는 지방선거가 되니까 그런 단체들이 정치 세력화를 하면서 지방의회 의원들 단체장들 이런 사람들을 많이 출마시켰어요. 저 같은 경우는 환경운동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때 최열 씨라고 혹시 기억하시나 모르겠습니다. 환경련의 의장을 지냈던 최열 씨가 전국에 세 사람의 단체장 후보로 냈습니다. 우리는 녹색 후보라고 그랬는데 정치적으로는 무소속이었지요. 녹색 후보 이런 걸 못 쓰게 했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아무래도 우리 지역이 가진 어떤 보수 세력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떨어질 줄 알았지만 그러나 젊은 내가 그런 걸 통해서 어떤 상징성, 그런 걸 보여주는 것이 지역의 어떤 정치 변화나 그리고 또 지방자치제가 살아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그런, 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어리석은 생각인데 그렇게 출마해서 떨어지고 난 다음에 8년 동안 고생, 쉬게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차도 못 타고 다니고.
◇이윤상> 실제로 예전에 지방 의원들은 무보수로 일하고요.
◆김종대> 맞습니다. 그때는 무보수 명예직이었었어요. 봉급이 없었습니다. 회의하면 회의 수당 정도는 있었습니다. 그때 기억으로는 한 30만 원, 점심은 줍디다, 그때 그래 했었는데요. 하하.
◇이윤상> 그런 상황 속에서 정치에 대한 회의감, 내가 과연 이 정당으로 그리고 이 보수 세력이 강한 곳에서 이어 나갈 것인가 이런 생각도 할 법한데 계속해서 정치를 이어가셨어요?
◆김종대> 그것은 저 나름대로 젊은 패기의 어떤 소명 의식, 사명 의식이 많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고 왜 그런가 하면 사실은 저 같은 사람이, 보시다시피 장애인 아닙니까, 저 같은 사람이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된다, 장애인 문제만 하더라도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완전히 차원이 다르잖아요. 저 같은 사람이 계속 좀 이 지역 사회 변화나 변혁이나 혁신을 하는 데 주체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그 대목에 있어서는 신앙적인 역량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프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빚도 많이 지고 어렵게 사는 상황 속에서 와이프가 어시장에서 커피 만들어서 배달도 하고 새벽 3시 반에 나가서 그렇게 하고.
◇이윤상> 의원직 하기 전에 만난 아내 분이신 거죠? 그 과정을 계속 함께하셨겠네요. 무보수로 내 돈 써가며 정치하고.
◆김종대> 맞습니다. YMCA에서 와이프를 만났거든요. 그 사람의 헌신적 여러 가지 내조에 의해서 제가 오늘 이 시간에 있게 됐다. 이런 생각으로 와이프 이야기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윤상> 눈가에 이미 눈물이 촉촉하게 맺혔는데요. 저희가 사실 오늘 이렇게 모신 건 지역 정치의 산증인으로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잖아요. 과연 말씀하신 원했던 변화들,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처음 의정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어떻게 좀 많이 왔습니까? 발전이 좀 됐습니까?
◆김종대> 1945년도 해방되고 1948년도 제헌국회 만들고 1950년도부터 1953년까지 전쟁 통에 1952년도에 지방자치제가 시작됐어요. 1960년도에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그런 활동들에 의해서 1961년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었어요. 그래서 지방자치제가 중단되었다가 1991년도 30년 만에 부활이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31년째거든요. 60년이라는 세월이 지방자치를 논하면 그런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기대하는 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볼 때는 중앙정치의 잘못이라고 저는 보는데 중앙 정치인들이 가진 지방에 대한 신뢰라든지 또 지방자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이런 것들을 지방자치제에 관계되는 법들이 아직도 그렇게 변하지 못했어요. 재작년에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개정이 됐지만 그래도 온전한 지방자치제를 운용해 나가는 데 있어서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지방의 자율권이나 그리고 또 지방이 어떤 자유 의지를 갖추고 정책을 만들고 그걸 수행해 나가는 데 수반되는 필수적 예산이 이런 것들이 아직 확보되지도 못했고요. 우리 지역에서 특례시를 우리가 얻어냈는데 특례시에 맞는 권한과 사무적 이양은 좀 됐을지 몰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역의 어떤 권한과 권한에 따른 어떤 재정의 자율성 이런 것들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당히 미진한 부분이 많은데, 그래도 하나 기대할 것은 국민의 민도가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기대해보면 변화될 수 있는 기반 조성은 되었다고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윤상> 특히나 지금 말씀하신 것 중에 지방 의원을 결국 정당에서 공천하는 정당 공천제가 있는 한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에서 지방 의원 고유의 목소리를 내기가 참 힘든 상황이지 않습니까?
◆김종대> 사실은 선출직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천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정당 정치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중앙정치의 예속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출직에 나서는 입장에서 보면 유권자들 눈치를 봐야 하고 유권자가 원하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항상 고민하고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지역에 사는 입장에서 보면 공천해 주는 사람 입장에서만 입맛에 맞는 활동만 하면 공천받게 되고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기 때문에 지금 이번 선거가 그런 거 아닙니까, 도의회에도 64명 중에서 3명만 야권이고 60명은 여권이고 우리 창원시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걸로 보면 공천제의 폐해가 많은 거죠. 그것은 중앙 정치인들이 가진 어떤 기득권을 계속 유지 발전시킬 목적으로 지방 사람들을 딱 볼모를 잡고 공천이라는 걸 가지고 그렇게 운용되지, 제가 볼 때는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는 그런 선량들이 뽑히기가 힘들 것이다. 저는 그렇게 단정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윤상>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다고 처음에도 말씀하셨지만 결국 민선 8기가 출발했고 우리 후배 정치인들이 김종대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건데요. 후배 정치인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종대> 예, 크게 저는 두 가지로 얘기하고 싶은데, 선거기간 동안에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여러 가지 내용들 그게 공약일 수도 있고 마음가짐일 수도 있는데, 소위 마음가짐 중에서 머슴 의식이라고 하는 것 내가 '내 주인은 유권자고 시민이다' 하는 그런 의식이 저도 의정 활동할 때 그것이 사명감이 되고 그것이 의정 활동 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이 많지만, 그것을 베스트 할 수 있는 어떤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머슴 의식을 갖는 게 참 중요하다, 동시에 자기가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했든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의정 활동하면 시정을 다루고 의정을 감시 견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해야 되는데 다 공부할 수 없죠. 의사가 만약에 의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직 말고는 그 직에서는 박사지만은 자기가 쓰레기 문제를 알겠어요. 대중교통 문제를 알겠습니까, 환경 문제를 알겠어요. 결국은 공부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다 공부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어떤 관심 분야에 있어서는 탁월한 어떤 식견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공부하고 연찬해야 하고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윤상> 머슴 의식과 전문성. 후임자들이 있기에 여한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믿어보죠. 끝으로 6선 최장수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지역민들의 꾸준한 선택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일 텐데요. 사랑해 주신 우리 지역 주민들께 끝으로 한 말씀 하시고 마치겠습니다.
◆김종대> 저는 장애인이고, 또 야당에 있는 저를 6선이나 뽑아주고 한 번 소선거구제 때 세 번 뽑아주고 8년이나 쉬었다가 다시 또 뽑아주고 이런 것들은 전국에 아마 전례가 없는 내용일 겁니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유권자들이 현명하고 사랑이 많은 분들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 사랑에 제가 보온하는 마음은 가졌지만, 실제 그렇게 많이 못 했어요. 그게 안타까웠지만 어쨌든지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 저런 부분에 다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가 못 했던 거 그분들이 대신 할 건데, 하여튼 간에 제가 아직 다 잘 알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살면서 지역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사회가 아름답게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열심히 계속하겠습니다.
◇이윤상> 은퇴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김종대> 저는 책을 좀 써서 후배들한테 사람들에게는 지방자치제의 이해를 넓히고 그다음에 우리 실질적으로 의정 활동하는 분들한테는 길잡이가 되는 참고서 같은 그런 책들을 좀 만들어서 그런 분들한테 많이 알리고 싶고 그런 일을 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윤상> 우리 지역의 어르신으로서 계속해서 남아주시길 바라고요. 그동안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종대> 감사합니다.
◇이윤상> 지금까지 창원시의회 김종대 의장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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