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최저임금은 곧 최고임금"..5% 인상에 시름 깊어진 저임금 노동자들
5년째 빌딩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남미해씨(60)는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다. 한 달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170만원 남짓이다. 고등학생 손녀와 함께 사는 남씨는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가스·전기요금, 교통비, 보험료 등 고정지출만으로도 빠듯한데 최근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이 가중됐다. 가족과 떨어져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남씨 남편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남편의 벌이는 주로 대출금 상환에 쓰는데 이 또한 금리가 인상돼 부담이 커졌다. 남씨는 30일 “코로나19 때문에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며 “물가가 오르고 생활이 힘들어진 것은 다 같이 겪는 일인데 노동자들에게는 아무 보상이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저임금 노동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소식에 시름이 더 깊어졌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460원(5%) 오른 시간당 9620원이다. 주 40시간을 꼬박 일하면 월 201만580원을 받는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은 이 정도 인상 폭으로 ‘3고(고물가·고금리·고유가)’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어르신 돌봄노동을 하는 요양보호사는 절반 이상이 시간제 계약직인데, 통상 최저임금을 받는다. 강신승 서울중랑요양원 분회장(61)은 “2500원짜리 식권을 사서 밥을 먹는데, 요즘엔 그 비용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온다”며 “야간근무를 하고 싶지 않아도 몇십만원 더 받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주 6일 일하는 미화 노동자 이금덕씨(66)는 실수령하는 월급이 130만원대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씨는 투병 생활을 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살게 됐지만 “항상 마이너스 생활”이라고 했다. 그는 “덜 먹고 병원에도 덜 가게 된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참 좋겠다”고 했다.
비정규직 청년들도 최저임금 ‘찔끔 인상’에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 고양시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모씨(21)는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도 핫바, 컵라면 등으로 ‘배부른 한 끼’를 먹으면 7000~8000원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박씨는 “점심·저녁 식사 비용만으로 1시간 반 만큼의 시급을 쓰는 셈”이라며 “서민음식으로 불렸던 음식들의 가격도 이미 만원을 넘어섰다. 한 시간 일한 돈으로는 밥 한 끼 사먹기 어렵다”고 했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구재우씨(19)는 “용돈을 받지 않아 월급의 3분의 2 정도는 대학 등록금으로 나간다”며 “등록금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있어 착잡하다. 일을 더 늘려야 하나 싶지만 공부도 해야 하니 여유롭지 않다”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인용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4.5%)는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실제 물가상승률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은 실질적으로는 줄어드는 셈”이라고 했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최저임금은 노조를 통해 자기 임금을 지킬 수 없는 이들의 임금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마저도 안 지키는 사업장이 많다”고 말했다.
박하얀·조해람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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