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서양 이방인이 바라봤던 조선..46권의 고서 유랑

김소연 2022. 6. 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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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에 조선을 최초로 알린 '하멜 표류기'는 1653년 태풍 난파 사고로 13년 28일간 조선에 머문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의 보고서다.

하멜보다 먼저 바타비아에 도착한 것은 그의 보고서였다.

신간 '1만1천 권의 조선'은 소설가 김인숙이 조선을 거론한 서양 고서 46권에 관해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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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소설가 산문 '1만1천 권의 조선'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 조선을 방문한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모습. 1897년 서울에서 볼 수 있었던 구식군대의 병졸과 신식군대의 병사(순사)를 비교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서구 사회에 조선을 최초로 알린 '하멜 표류기'는 1653년 태풍 난파 사고로 13년 28일간 조선에 머문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의 보고서다. 동인도회사 일원인 하멜은 조선을 탈출해 본래의 목적지인 일본 나가사키로 이동했지만 억류 아닌 억류 상태를 이어갔다. 일본 당국의 조사를 받느라 한 해에 한 번뿐인 바타비아(자카르타)행 배를 놓쳤기 때문이다.

하멜보다 먼저 바타비아에 도착한 것은 그의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상업 출판사들이 여러 판본으로 출간하면서 어느새 조난 소설처럼 성격이 바뀌었다. 하멜의 뜻과 상관없이 조선은 '야만의 나라'가 됐고 난데없는 코끼리와 악어 삽화가 등장했다. 독자들의 열광에 힘입어 왜곡된 내용으로 장식된 하멜의 책은 프랑스어, 영어, 덴마크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됐다.

'하멜 표류기' 네덜란드어 완역본. 은행나무 제공

신간 '1만1천 권의 조선'은 소설가 김인숙이 조선을 거론한 서양 고서 46권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1만1,000여 권의 한국학 자료가 소장된 명지대 LG한국학자료관에서 우연히 고서들을 접하고 책과 그 시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독일 예수회 수도사이자 학자였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 '중국도설'(1667·라틴어), 독일인 아담 샬 신부의 '중국포교사'(1665·라틴어),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오래된 조선'(1946·영어), 이탈리아 상인 안토니오 카를레티의 '항해록'(1701·이탈리아어), 프랑스 동양학자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1894·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기록된 고서를 다룬다. 46권 중에는 조선을 다룬 기록의 분량이나 내용의 중요도·오류 문제로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은 책이 상당수다.

'하멜 표류기' 네덜란드어 완역본(왼쪽)과 독일어 판본 표지. 은행나무 제공

이들 고서 속 조선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 또는 몇 문장에 그치거나 허점투성이인 게 많다. 저자는 소설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책 속 기록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멜 표류기'(1668·네덜란드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여러 판본을 통한 오해와 편견의 역사를 언급한다. 김옥균 암살범으로 유명한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의 책도 다룬다. 프랑스 소설가 J. H. 로니와 함께 번역한 프랑스어 '춘향전'은 '향기로운 봄'(1892)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심청전'은 '다시 꽃 핀 마른 나무'(1895)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저자는 '다시 꽃 핀 마른 나무'의 서문을 근거로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의 동기를 추론한다. 왕정주의자인 홍종우가 왕에 불충한 김옥균을 용서할 수 없었으리라는 해석이다. 저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고서의 외형에도 주목했다. 120장에 이르는 고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만1천 권의 조선·김인숙 지음·은행나무 발행·440쪽·2만2,000원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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