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기뒤 '임신중지' 되레 감소..'안전'은 여전히 방치

최윤아 2022. 6. 30. 1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임신중지 경험률·횟수 줄었지만
약물 이용 임신중지 비용은 늘어
음성적 거래 늘어난 영향일 수도
식약처, 임신중지약물 승인 계속 미뤄
2019년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맞이 임신중지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해 기준 인공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의 비율이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전인 2018년 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죄 처벌 조항의 효력이 사라져도 임신중지율이 급격히 높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다만, 임신중지 약물 구입 비용은 이전보다 확연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임신중지 약물 도입 허가가 미뤄진 사이 음성적 통로로 비싼 약을 구하는 관행이 이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21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보사연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것으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이뤄진 첫 대규모 실태조사다. 앞선 조사는 2005년, 2011년, 2018년에 있었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해 11월19일부터 12월6일까지 15∼49살 여성 8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최근 임신·출산 연령이 높아진 점을 반영해 조사대상 연령을 기존 15∼44살에서 15~49살까지로 늘렸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인공 임신중절 경험률이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다는 점이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급격한 반등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었으나, 2021년 임신중지 경험률은 2018년에 비해 외려 줄었다. 2021년 전체 응답자(15∼49살) 가운데 성경험이 있는 여성의 8.6%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018년 실태조사와 정확한 비교를 위해 연령을 15∼44살로 좁히면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의 임신중절 경험률은 이전 조사(10.3%)보다 3.7%p 줄어든 6.6%였다. 평균 임신중절 횟수(1.04회) 역시 2018년 실태조사(1.43회)보다 줄었다. 보사연은 “피임 인지·실천율 증가, 임신중지 경험자의 평균 횟수 감소, 만15∼44살 여성의 감소가 임신중절 경험률 감소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했다.

다만, 연도별 임신중지 ‘추정’ 건수는 2018년 2만3175건으로 최저점을 찍은 후 2019년 2만6985건, 2020년 3만2063건으로 근소하게 반등했다. ‘추정’ 건수는 여성 1000명당 임신중절 건수에 실제 만15∼44세 인구수를 곱해 산출한다. 이처럼 통계의 기준에 따라 다소 엇갈리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 보사연은 “전반적 추세를 보면, 감소세가 맞다. 2018년 이후 근소하게 임신중절 추정 건수가 늘어난 배경은 추후 지속적인 관찰·분석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다. 낙태죄 비범죄화에 따른 영향인지는 현재 조사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임신중지 경험자(15∼49살)의 평균 임신중지 연령은 28.5살이었다. 임신중지 당시 혼인 상태는 미혼이 50.8%로 가장 많았고, 이어 법률혼(39.9%), 사실혼·동거(7.9%), 별거·이혼·사별(1.3%) 순이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임신중지를 위해 지출한 비용이 오히려 전보다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2018년 실태조사와 정확한 비교를 위해 15∼44살 약물 사용 임신중지 경험자를 대상으로 비용을 물었더니, △10만원 미만 30% △10만∼20만원 20% △50만원 이상이 20%였다. 이는 △10만원 미만 36.3% △10만∼20만원 24.3% △50만원 이상 9.6%였던 2018년 조사와 비교하면, 20만원 미만으로 약물을 비교적 저렴하게 산 사람은 소폭 줄고, 50만원 이상 큰 비용을 지출한 사람은 2배 이상 늘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두고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 비용이 이전보다 확연히 늘었다”고 밝혔다.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 경험자(15∼44살)는 8.3%였다. 이는 약물만 사용한 경우(2.7%)와 약물 후 수술까지 했다는 응답(5.5%)을 합한 수치다. 수술로 임신중지를 한 비율은 91.8%였다. 2018년 실태조사와 견주면, 수술로 임신중지를 한 비율(90.2%)은 소폭 늘고, 약물로 임신중지를 한 비율(9.8%)은 소폭 줄었다.

약물을 사용한 임신중지는 현행 법 테두리 밖에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통을 승인한 임신중지 약물이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지미소’(현대약품)의 승인을 미루고 있다. 애초 품목허가 신청에 대한 심사 처리기한은 지난해 11월7일까지였지만, 추가 자료 요청 등을 이유로 승인은 미뤄진 상태다.

약물을 사용해 임신중지를 한 여성의 대다수는 인터넷 등 음성적인 경로를 찾는 실정이다. 이렇게 얻은 임신중지 약물은 출처를 확인할 수 없어 안전성이 떨어지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변수정 보사연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에서 임신중지 약물 불법 유통 규모, 실태 등은 다루지 않았다”다면서도 “불법 유통 약물이 (임신중지 약물 비용)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뒤에도 정부가 임신중지권 보장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 여성들은 정보의 결핍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서 임신중지 관련 정보를 얻었냐’는 질문에 △인터넷(62.6%) △친구 및 지인(40.9%)이라는 응답(중복 응답)이 많았고 △의료인이라고 답한 응답은 28.2%에 불과했다. 꼭 필요한 정보로는 △비용 정보(81.6%)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79.2%)라는 응답(중복 응답)이 많았다. 연구원은 “수술 가능 의료기관, 비용 등 임신중지 가능성과 위험성에 직결되는 정보가 필요해 보인다. 안전한 임신중지 환경을 위해 대체입법이 시급하다”고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