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 막아 인플레 해결한다고?"..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근로소득자들이 가난해지는데… 니네가 희생해라는거네."
"기업들은 임금을 올리든 동결하든 물건값은 그대로 올릴거고, 임금 동결하면 기업들만 이득이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최근 정부에 대한 비판 글들이 올라왔다. 경영계를 향한 윤석열 정부의 '인금 인상 자제' 요청을 언급한 것이다. 국무총리와 부총리가 연이어 '임금 인상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물가인상 부담을 '유리지갑'인 직장인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내놓은 임금 인상 억제를 통한 인플레이션 완화가 답이 될 수 있을까.
'임금 인상발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급등한 만큼 임금을 인상하면 기업이 늘어난 인건비를 제품가격에 전가해 다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을 말한다. 정부는 최근 이 같은 우려를 여러 차례 드러내며 경영계에 '임금 인상 자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지난 2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을 만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완전히 터를 잡아서 물가 상승,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는 게 정부의 강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총리와 부총리가 연이어 '물가와 임금 상승 악순환' 문제를 제기하면서 임금 인상을 막아 물가상승 고통을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직장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최저임금 결정 직전에 총리와 부총리가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인상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여론전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노사 합의 사안인 임금 인상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자유'를 강조한 현 정부 기조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한 총리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시장경제나 자유 차원에서 봤을 때 적어도 물가를 직접 통제하는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라며 시장자유주의 정책을 강조한 바 있다.
물가 급등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의 대규모 재정지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여파까지 더해지면서 인플레이션 먹구름은 올 하반기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조사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 100 기준)는 지난달 157.4포인트로 1년 전보다 22.9% 상승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3월(159.7)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작년 5월보다 5.4% 올라 거의 14년 만에 5%대를 기록했다.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밀가루 등 가공식품 물가는 7.6% 뛰었다.
그러나 물가 급등을 임금 상승 억제로 해결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9일 YTN 라디오에서 "정부가 나서서 임금 결정까지 구체적인 방향성은 정할 수 있어도 구체적인 임금 수준까지 동결이나 낮게 인상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구시대적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임금 비용이 올라가서 물가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은 오일쇼크 때 얘기이고, '임금 인상발 인플레이션'도 그때 등장한 이론"이라면서 "사실 임금 비용이 전체 영업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을 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이 올라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며 "임금이 오른 만큼 가격을 올려서 가격에 전가하면 고용이 줄 일이 없다. 또 경영 혁신을 통해서 총 비용을 줄이면 일자리에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경제 상황이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유사한 점도 있지만 '복합위기'라는 점에서 그때와 양상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조어로 성장은 정체된 상황에서 물가는 지속해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이후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은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70년 이후 노동시장 제도의 변화로 유가 상승 등 공급 충격이 임금 상승의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 또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될 가능성을 점검하는 보고서에서 "임금·물가의 악순환적 상승 가능성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1970년대는 달러가 약세였지만 지금은 강세이고, 물가 상승 폭도 적으며, 주요 금융기구의 재정 건전성이 더 잘 관리되고 있고, 개발도상국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에 대한 분명한 권한을 가진 점 또한 그때와는 달라진 점이라는 분석이다.
물가상승 탓에 한국의 실질임금은 지난해보다 1.8% 하락할 것이라고 OECD가 전망했다. 연 5%에 육박하는 물가상승률로 인해 근로자들의 월급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인플레이션이 실질임금을 끌어내릴 것이란 우려가 컸는데, OECD 전망을 통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한국의 실질임금이 감소한 것은 지금처럼 고물가로 힘들었던 2011년(-2.9%) 이후 11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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