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줄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정부·국회 대체입법 손놔

김영신 2022. 6. 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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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 넘는 입법 공백에 혼란
보사연 "대체입법 신속 촉구"..복지부 "공백기 여성건강권 보호 노력"
임신중절 입법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인공 임신중절(임신중절·낙태)을 합법화하던 일명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뒤 전 세계적으로 파장이 일면서 국내 입법 논쟁에도 다시금 불이 붙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반영한 법 개정(대체입법)을 국회가 2020년 말까지 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회에서 대체입법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해 임신중절 권리를 보장하는 헌재 결정 이후에도 양지화하지 못한 현실이 장기화했다.

이에 학계와 여성계, 의료계 등에서는 임신중절 정착을 위한 대체입법 요구가 커진다. 동시에 이번 미국 연방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낙태 반대 측 여론도 재차 대두되고 있어 관련 논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0일 만 15세∼49세 여성 8천5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체입법이 신속히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만 15∼49세 임신을 경험한 여성 3천519명 중 17.2%인 606명이 임신중절 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 15∼44세 응답자 가운데서는 임신경험이 있는 여성(2천362명)의 15.5%가 임신중절 경험이 있었다.

피임 증가, 청소년 성교육 강화 등 영향으로 전반적인 임신중절은 감소세이지만,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상까지 고려하면 여전히 '위기 임신' 여성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사연은 지적했다.

[그래픽] 인공임신중절률 추이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약 3만2천 건의 인공임신중절(낙태)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yoon2@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보사연은 "관련 법·제도와 가이드라인이 부재해 의료현장에서 여성과 의사가 안전하지 않은 채로 임신중절을 하거나, 여성이 임신중절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환경"이라며 "위기 상황의 여성을 지원하고 안전한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대체입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도 이번 조사는 헌재 결정으로 낙태죄가 없어진 2020년 12월 이후 현황은 반영되지 않아 완전한 결론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임신중절 관련 정책에 대한 수요가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정부·국회에 따르면 여야는 헌재가 요구한 대체입법 시한이었던 2020년 말이 임박해 관련 입법에 나섰으나, 현재까지 실질적인 결과나 진전은 전혀 없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을,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해주는 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낙태 허용 기간을 10주로 제안하는 안을 발의했다.

이에 더해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정부안을 포함해 현재 6건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관련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020년 관련 공청회를 열기도 했으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불참했고 후속 논의 절차가 흐지부지됐다.

2019년 4월 헌재 판결 이후 3년이 넘도록 국내에서 낙태 입법 논의는 사실상 멈춰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신중절이 합법이라는 취지의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 균형을 잡도록 하는 제대로 된 입법 공백 상태가 길어진다.

입법 부재로 임신중절이 정착하지 못하면서 실제 여성과 의료 현장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신중절 (CG) [연합뉴스TV 제공]

임신중절을 하고자 하는 여성은 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온라인 등에서 수소문해야 하는 실정이며, 일부 병원이 수술을 거부해도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임신중절 수술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병원마다 각기 다른 수술비를 제시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먹는 낙태약' 도입이 시급하다는 요구도 크지만, 관련 법·제도 부재로 국내에선 유통 자체가 불법이다.

식약처는 미프지미소정 등 약물 허가 심사를 1년째 하고 있으며, 약물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법 개정안 역시 국회에 걸려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온라인을 통해 먹는 낙태약 구매처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먹는 약 유통은 현행법 상 불법이다 보니 조사·확인이 어려워 제대로 된 현황 파악도 안 되고 있다.

임신중절 찬성·반대 [연합뉴스DB]

여성·시민단체들도 하루빨리 대체입법을 만들어 임신중절을 하나의 '보건 의료 서비스'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미국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국내 입법에 속도를 내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국회가 본격적으로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성계와 의료계, 종교계 등 각계 찬반이 엇갈리는 현안인데다, 법안 각론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도 있어 앞으로도 진통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계는 태아 생명권과 윤리 차원에서 임신중절 합법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낙태를 제한하면 여성과 소녀들을 위험하게 몰아가 여러 합병증,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것"이라며 이번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퇴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보사연은 "실효성 있는 성·피임 교육을 강조하고 낙태 전후의 체계적인 상담·지원 등이 필요하다"며 "발전된 법적 환경과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을 위해 조속히 대체입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임신중절 입법 공백기에 여성 건강권 보호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산부인과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정보접근 측면에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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