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은 대대적 혁신"..니어재단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김윤철 기자 = 원로들과 석학들이 모여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분야별 당면 과제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민간 싱크탱크 니어(NEAR)재단은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재단 창립 15주년 기념 세미나 '한국의 근현대사와 미래-성취, 반성, 회한 그리고 길'을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 근현대사와 문화 ▲ 정치와 법치, 민주주의 ▲ 경제와 복지 ▲ 교육, 과학기술, NGO ▲ 외교와 국제질서 등 5개 세션에서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근현대사의 성취, 반성, 회한을 딛고 전개돼야 한다"며 "동시대를 살아온 증인들의 가슴 속에 담긴 감회와 회한을 바탕으로 미래 한국의 길을 포장하는 예지가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원로들은 한국 사회가 유례없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양극화와 분열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며 이번 정부를 포함해 향후 한국이 어떻게 미래를 개척하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50년 후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제와 복지 세션 발제를 맡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 저력만으로는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수 없고 국가의 리더십이 이를 잘 이끌어줘야 한다"며 리더십과 저출산 문제, 경제 안보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우리나라의 노동, 재정, 교육, 경제 구도에 대해 6개월 내에라도 대대적인 혁신 프로그램을 조속히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며 "이 문제들은 서로 얽혀있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겸 한국역사연구원장은 "윤 정부의 '자본주도 시장 경제'는 어디까지나 재출발"이라며 "중산층과 노동 계층을 위한 복지정책의 성과가 이 정권의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만큼은 정권을 떠나서, 임기 중에 반드시 완화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며 "연금을 포함한 복지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은 한 세트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치 제도 면에서는 국민의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편하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현행 대통령 중심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요소는 튼튼한 안보, 국가 경쟁력 확보와 이를 이루기 위한 바탕인 사회통합과 정치 선진화"라며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도 "건강한 자유민주주의 요건으로, 우선 의원내각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대표성을 높이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대의정치가 부정되고 위기에 빠지는 것은 역사의 후퇴"라며 "선거제도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내각제 개헌을 해야 정치가 복원된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윤석열 정부가 수명을 다한 대통령제를 넘어서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며 "내각제에서는 역량을 쌓은 사람만이 총리와 장관이 될 수 있어 지금처럼 누구 밑에 줄을 잘 서 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국가 원로와 학자들은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서 한국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를 모았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는 "한국의 입장에서 분명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고 산술적인 등거리 외교의 대상도 아니라는 점"이라며 "외교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정치행위지만 상대방에게 일관되게 설득할 수 있는 원칙과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남북관계는 비핵화나 통일을 앞세우기보다는 북한을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 전 장관은 "한국 미래를 결정할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남북관계로, 이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으면 미래에 큰 장애 요인이 생길 것"이라며 "남과 북은 별개의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을 한일, 한미 정상회담 혹은 기타 국가와의 정상회담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야지, 특별한 사건으로 극화해 정치적 바람을 일으키고, 세상이 바뀌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명 전환기에 교육혁신을 지금 1년 게을리하면 향후 그 몇 배로 인재 양성에 타격을 입는다"며 "수능을 바꾸고, 의미 없는 문·이과 구분을 없애며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방해하는 교육부의 대학 규제를 멈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며 혁신은 과학기술에서 나온다"면서 "인력 양성과 담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산업이 바로 서고 그래야 성장을 통해 사회문화적인 문제와 갈등이 해결될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인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한국의 생존 명제는 '자강'이라는 기본 본질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먹거리와 에너지의 실질적 자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 선진국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국가 원로 15명을 비롯해 송호근 포항공과대 석좌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학자 8명이 참석했다.
chi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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