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 다양성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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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물물에 담갔던 수박을 갈라 먹는 모습은 무더운 여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수박이 이들에게서 '변절자'를 상징하는 과일이 된 것은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갛다'는 점 때문이다.
처음부터 '순수성'을 고집했을 때보다 다른 종자를 하나로 합쳤을 때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것, 바로 수박이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그들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강성 지지층이 마음에 안 드는 노선의 정치인 명단을 만들어 '수박 리스트'를 만드는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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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물물에 담갔던 수박을 갈라 먹는 모습은 무더운 여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2020년대에 이르러 한국에서 다른 뜻을 갖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당내 반대파를 가리켜 ‘수박’이라고 비난하면서, ‘변절자’를 뜻하는 단어가 돼 버렸다.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의원부터가 이 일에 앞장섰다. 지난해 9월 페이스북 글에서 대장동 의혹을 방어하면서 “저에게 공영개발을 포기하라고 넌지시 압력을 가하던 우리 안의 수박들”이라고 적었다.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사업에 반대했던 당내 인사를 ‘수박’에 빗댄 것이다. 심한 표현이라고 느꼈는지, 의미를 더 명확히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1시간쯤 뒤 ‘수박들”을 “수박 기득권자들”이라고 수정했다.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서 항의하자, 이재명 의원 측은 수박의 의미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뜻하는 정치 용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러니, 이 의원이 지지자들에게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모욕적 언사, 문자폭탄 같은 억압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혐오 표현’ 자제를 요청하더라도 통할 리 없다. 오늘도 민주당 홈페이지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수박들 좀 퇴출시켜라”라는 글이 줄을 잇는다.
수박이 이들에게서 ‘변절자’를 상징하는 과일이 된 것은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갛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수박은 처음부터 ‘하이브리드’다. 수박을 재배하려면 수박 씨를 바로 밭에 심지 않는다. 수박 모종은 박이나 호박의 뿌리에 줄기를 접목해 만든다. 그래야 병에 강해지고, 더 튼튼하게 자란다. 강렬한 한여름의 햇볕 밑에서 박의 뿌리가 빨아들인 수분을 수박의 줄기로 이동시켜, 더 크고 단 수박이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순수성’을 고집했을 때보다 다른 종자를 하나로 합쳤을 때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것, 바로 수박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색깔의 사람만 모여 있어서는 발전이 일어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간 과일에만 주목하지, 그 과일을 만든 ‘다양성이 승리한다’는 교훈 같은 점은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해외 사례와도 맞지 않는다. 서구에서는 생태를 표방하는 좌파들을 ‘수박’이라고 불렀다. 생태주의의 녹색과 사회주의의 붉은색이 섞였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그들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강성 지지층이 마음에 안 드는 노선의 정치인 명단을 만들어 ‘수박 리스트’를 만드는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수박을 맛보는 것은 천사들의 음식을 아는 것이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수박이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마라. 한국 정치판에 더워 쓰러지기 직전, 한 번이라도 갈증을 해소해 준 적이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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