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인력난..뾰족한 대안이 없다 [법원 미제 위험 수위]

2022. 6. 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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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1명당 사건 수 日의 3배·독일 5배
'밥 먹듯 야근' 강요하는 문화 이젠 옛말
판사·재판연구원 등 인적 인프라 확충을

법원 미제 사건이 증가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법원장→대법관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형 승진구조가 사라졌고, 판사 근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 외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판사 1명이 연간 담당하는 사건 수는 464건으로 독일의 5.17배, 일본의 3.05배 수준이다. 반복되는 법관의 과로사 문제는 현재 인력으로 사건을 처리하기엔 한계에 봉착했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해 사법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법관 업무부담 및 그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법관들이 시간 압박을 받지 않고 현재 수준의 사건을 적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 680~980명가량이 증원돼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단순히 판사들이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법관들의 근무 분위기도 달라졌다는 평가다. 수도권 법원에서 초임시절을 보낸 한 판사는 “2010년 초반만 해도 주 6일에 매일 밤 9시, 10시까지 야근은 기본이었고, 단독 판사들은 11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2010년대 말에 돌아와 보니 야근을 거의 안하는 분위기였다. 확실히 변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법관 인식에도 균열이 가고 있는 것이다.

인력이 늘어나지 않는 한 사건처리에 한계가 있다는 푸념도 나온다. 또다른 판사는 “배석판사가 일주일에 4건 처리하는 것도 야근에 주말근무를 껴야 가능한 높은 강도”이라며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사안이 복잡해진 영향도 있다. 주 3건 처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선 판사 근로시간을 늘리기보다 인적·물적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재판연구원(로클럭) 증원은 현실적인 빠른 처방으로 꼽힌다. 재판연구원은 사건 기록검토, 법리연구, 판결문 초안 작성 등 보조역할을 하면서 법관의 재판을 돕는 인력이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가능하며 현재 약 300명의 재판연구원이 전국 각지 법원에서 근무 중이다. 법원행정처는 내년도 증원 관련 기획재정부와 논의 단계에 있으며 선발절차를 감안해 이르면 7월 초 정원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 부장판사는 “무조건 빨리하라고 해서 옛날처럼 일할 수 없다”며 “머리 젊은 보조 인력들이 보충되면 해볼 만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판사 수 증원에 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법원조직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다 현실적으로 판사 1인당 필요한 부수 인력을 늘리고, 법정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무작정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인력 수급 전망도 좋지 않다. 2026년부터 변호사가 경력판사가 될 수 있는 최소 경력이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나면서 임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10년 차 이상 중견 변호사가 연봉을 깎고, 서울을 떠나 지방법원에서 머물러야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지원 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10년이상 법조경력자가 신임 법관에 지원한 숫자는 평균 18명에 불과하다. 법원 내부에선 판사 임용이 가능한 법조경력을 현행 5년으로 유지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주어진 여건에서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합의부장들이 배석판사 이끌어서 재판을 빨리 하는 재판장이 있고, 쉬운 사건만 하는 재판장도 있다”며 “(판사들이)경험해보니 꼭 일 잘하는 재판부는 지원장, 수석부장으로 가고, 일 안하는 재판장은 서울에서도 선호도가 떨어지는 곳으로 가는 게 알려지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사시스템 내에서 인사권한을 활용해 유인책을 형성해야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판사는 “실질적인 일처리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법정에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판결문의 질을 올리는 개선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동현 기자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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