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끊기자 몸값 떨어진 비상장사.. 틈새시장서 신난 SI들

노자운 기자 2022. 6. 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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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투자금 '골라 받던' 스타트업, 이제는 상황 역전..몸값 반토막도 속출
기업가치 떨어지자 대기업 등 '지분 줍줍'

얼어붙은 증시에 비상장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잇달아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업들의 몸값 고공 행진으로 이른바 유니콘(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인 비상장사)들이 재무적투자자(FI)의 돈을 가려서 받는 사례가 속출했다면, 요즘은 밸류에이션을 대폭 내리더라도 투자 유치에 성공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F) 등 FI가 아닌 전략적투자자(SI)들은 비상장사에 지분 투자를 늘리고 있다. SI는 일정 기간 펀드를 운용해 수익을 내야 하는 FI와 달리 목표 수익률이나 정해진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한이 없어, 기업 가치가 하락했을 때 싼 값에 알짜 회사 지분을 사두려는 수요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러스트=정다운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배달 대행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와 명품 커머스 플랫폼 발란 등 비상장사들이 후속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메쉬코리아는 지난해부터 1조원 수준의 기업가치에 후속 투자를 유치 중이나 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업계에서는 적정 기업가치를 회사가 원하는 수준의 절반인 약 5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발란은 지난 4월부터 기업가치 8000억원에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는 이달 중 7000억~8000억원대 밸류에이션으로 마무리될 예정인데, 한때 기업가치에 대한 회사와 기관의 눈높이에 꽤 간극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VC 관계자는 “요즘은 밸류에이션을 얼마나 인정 받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투자 유치 자체가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프리(pre)IPO나 시리즈C·D 같은 후기 투자뿐 아니라 시드(seed)나 프리A 등 초기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다.

VC들은 신규 투자 집행을 전체적으로 쉬는 분위기다. 지난해 결성해 놓은 펀드 재원이 9조원을 넘는 만큼 투자를 계속 쉴 수는 없지만, 증시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하반기까지 ‘몸사리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 난항은 특히 IT 플랫폼 기업들 사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VC 임원은 “IT 플랫폼의 경우 이상향이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되는 것인데, 양대 플랫폼인 두 회사 몸값도 연일 떨어지고 있으니 비상장사들의 밸류에이션 조정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는 각각 35%, 38% 하락했다.

FI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과 달리 대기업 등 SI들은 잇달아 유니콘에 뭉칫돈을 넣고 있다.

지난 27일 KT는 물류 기업 팀프레시의 시리즈D 투자에 참여했다. 전체 투자금 1600억원 가운데 553억원을 맡았다. KT는 이번 투자를 통해 팀프레시의 지분 11.4%를 보유한 2대주주가 됐다.

앞서 지난 14일 CJ ENM은 머스트잇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머스트잇은 발란, 트렌비와 함께 3대 명품 이커머스 기업으로 꼽힌다. 신선식품 플랫폼 오아시스마켓은 이랜드리테일에 330억원을 투자 받았으며, 커머스·애드테크 기업 지니웍스도 LG유플러스를 SI로 맞았다.

한 비상장 스타트업 대표는 “사실 SI는 회사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투자자는 아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SI는 운용 기한이 정해진 펀드로 투자하는 FI와 달리 엑시트 시기를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으나, 피투자사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사업 시너지 혹은 신사업 진출을 목적으로 지분 투자를 단행하는 만큼, 두 회사 간 서비스 연동이나 자사 제품의 우선 공급 등 특정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한 VC 관계자는 “앞서 투자해 놓은 회사라면 포트폴리오사이기 때문에 후속 투자를 해줘야 하지만, 지분 관계가 없던 회사에 굳이 투자하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며 “이런 때일 수록 1, 2등 업체에만 투자금이 몰리고 그 외에는 자금난을 겪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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