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병원 첫 보건백서·노년층엔 의료 나눔..'인술' 꽃피우다

권도경 기자 2022. 6. 30. 09:4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림대의료원은 국민 영양·보건상태를 조사 연구하고 관련 치료센터를 운영해오면서 국내 공공의료와 보건정책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한림대의료원의 미래의 의술 혁신을 상징하는 이미지. 한림대의료원 제공
1981년에 출간된‘보건백서’.
1978년 헌혈혈액원으로 지정된 한강성심병원 본관과 신관의 모습.
1980년 서울보건연구회 제1차 세미나 기념사진.
한국노인보건의료센터 개원기념 국제심포지엄 현장 사진.

■ 한림대의료원, 의료 선진화 ‘50년史’ 발간 (下)

빈민층 대상 무료 진료하고

국내 첫 국민 영양실태 분석

빈민촌 돌며 보건상태 조사

영세민 복지사업으로 확대

美와 손잡고 혈액원 만들어

노인전문 치료센터도 개원

정부는 산업화를 바탕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보건의료를 주요 국정과제로 앞세웠다. 건강보험을 지난 1977년 실시해 1989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장’을 실현했다. 그 결과 의료 수요가 급증하게 됐고, 병원 시설 증설이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한림대의료원의 모습은 이 같은 국민 의료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한림대의료원은 1960년대 국내 의료 체계가 취약했을 때부터 국내 보건의료 실태를 조사·분석하고 데이터를 정비해 공공의료와 보건정책의 토대를 세웠다. 1981년에는 민간 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보건백서(保健白書)를 발간해 체계적인 보건연구의 발판을 마련했다. 고령화사회를 앞두고 노인 의학의 시금석도 놓았다. 한림대의료원이 한국 의료 발전을 이끈 숨은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민간병원 최초 보건백서 발간 = 한림대의료원은 일송 윤덕선 박사가 1971년 설립한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이 모태다. 윤 박사는 당시 빈민층이 많이 살던 서울 영등포에서 개원했다.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 윤 박사는 영등포를 거점으로 서울 신림동 등 빈민층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와 복지사업을 펼치면서 병원을 일궈가기 시작했다. 이후 한림대의료원은 산하 병원 5곳, 관련 학교 3곳, 관련 복지관 4곳 등으로 성장했다.

보건의료 성과도 차곡차곡 쌓였다. 1968년 한국의과학연구소를 설립해, 국민 영양실태를 조사하면서 ‘한국 의과학’이란 학술지를 매달 약 2000부 발간해 전국에 무료 배포했다. 1971년에는 대한병원협회와 ‘병원센서스’를 공동 실시해, 2년 동안 국내 전 지역 20개 병상 이상 269개 병원을 실태 조사했다. 이 같은 장기간 병원 조사는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지역별 의료혜택의 불균형을 자세히 조사해 국내 보건의료 수준을 끌어올리는 기초자료가 됐다. 1972년에는 ‘임상영양연구센터’를 설립, 영양실태조사를 전문적으로 시행했다. 이를 통해 한국인이 상용하는 식품과 질병과의 관계를 규명하고, 영양 상태를 개선시켜 건강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5년에는 인구문제연구소를 발족해 서울 영등포구와 동대문구 지역 건강상태 및 의료 수혜 실태를 조사했다. 이는 민간의료 기관 단위에서는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착수된 조사다. 조사 결과에 기초해 인구·의료보험에 관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입안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건강보험 시행이라는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재단은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복지를 구상했다. 1980년 설립한 서울보건연구회는 보건문제의 세계적 추세, 국내 현황, 기본여건을 조사해 1981년 8월 ‘보건백서’ 상하 2권을 출간했다. 상권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과거와 현재’, ‘보건의료의 세계적인 추세’ 2편으로 꾸렸다. 보건의료 정책, 조직체계, 자원, 행태, 환경, 국민건강 수준 및 보건의료의 역사와 세계 현황 등이 담겼다. 하권은 ‘2000년대 보건의료’ 편이다. 보건조직망, 의료전달체계, 의료자원, 재원조달 및 분배, 보건의료 정보체계의 수립, 모자 보건, 학교 보건, 국민영양, 재활, 노인 보건, 구강 보건, 환경질서의 재정립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국가보건 정책 방향을 논했다.

재단은 보건연구회의 성과를 기반으로 이후 국내 보건의료실태를 심층적으로 조사했다. 보건의료 환경이 열악한 서울 신림동, 난곡 일대를 중심으로 ‘성심의료재단 도시영세민 종합복지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사회복지사업, 의료사업, 시설과 기구 지원, 탁아소 설치 등이 지원됐다. 한림대의료원은 현재까지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한림화상재단 등을 운영하면서 의술 나눔과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최초 혈액원 설립…노인 의학의 시금석 = 1954년 초 한국 최초로 세워진 혈액원은 혈액이 정상적인 경로로 수급되는 문화를 만들었다. 당시 6·25전쟁을 거치면서 혈액 공급이 어려웠고 매혈도 성행했다. 윤 박사는 1951년부터 서울백병원 재건에 동참하면서 보존혈액 기술을 배웠다. 미군병원에서 기자재를 원조받아 백병원 내 혈액원을 만들었다. 1978년 8월에는 한강성심병원이 헌혈혈액원으로 지정됐다. 수술에 필요한 혈액은 체계적으로 공급받기 어렵고 매혈도 끊이지 않아 부작용도 상당했다. 사회 문제로 자주 비화돼 보건 당국은 혈액원 설치를 권장했다. 이에 재단과 한강성심병원은 1975년 하반기부터 준비해 3년만인 1978년 결실을 맺었다.

1980년대 이후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노인 인구 비율도 올라갔다. 선진국에서 먼저 경험한 고령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노령화에 따른 복합적인 질병이었다. 노인 치료는 의사 진료뿐만 아니라 간호, 물리 치료, 상담, 사회사업 등이 참여하는 전인적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 만큼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연구와 인력 양성이 수반돼야 하는 문제였다.

윤 박사 등은 1980년대 중반 일본의 ‘도쿄(東京)도 노인종합연구소’와 교류하면서 고령화사회에 대비했다. 1989년 일본국제협력사업단(JICA)과 의료 협력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고 ‘한국노인보건의료센터’ 설립을 구체화했다. 의료센터 기공식은 1990년 1월에 열렸다. 센터는 JICA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제반 협력을 받기로 됐다. 한국 최초의 노인병 전문 치료·연구 기관인 한국노인보건의료센터는 1991년 10월 개원했다. 한강성심병원 앞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10층 건물 규모로 병상 170개와 연구실, 재활의학실 등을 갖췄다. 노인병에 대한 예방·치료, 노인학 관련 연구와 기술 개발, 전문 의료인 교육과 훈련 등이 목적이었다. 진료과목은 총 18개 과였다. 이곳은 △뇌졸중 환자를 중심으로 진단 및 치료 시스템 확보 △환자추적관리 △임상 및 기초연구를 병행하는 뇌졸중센터 △한방과 양방을 병행 치료하는 한강한의원 △노인건강대학 등이 특성화됐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