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에 국가부도·노동자시위.."2차대전 후 최악 경제위기"
■ Global Focus - ‘도미노 디폴트’ 내몰린 개도국
스리랑카, 2주간 연료판매 중지
파키스탄, 구제 금융으로 연명
아르헨, 기준금리 52%로 올려
페루, 트럭 기사·농부 줄파업
에콰도르, 대통령 탄핵 표결
예멘 등 식량 위기 ‘최고 경계’
일각 “아랍의 봄 재연 가능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경제에 나비효과가 돼 날아들고 있다. 2년 넘게 발목을 잡던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며 경제적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지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현상’이 덮치며 신흥국들이 줄줄이 디폴트 위기에 놓이게 된 것. 스리랑카가 지난달 국가 부도를 선언했고, 파키스탄과 라오스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부채 대응을 위해 파리클럽과 G20이 도입한 ‘공통 프레임워크’도 모두 멈춰버린 상태다.
노동자들의 시위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의 임금으로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물가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는 외침이다.비료값 상승에 항의하는 농부들이 식량 생산을 거부하고 나서는가 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트럭 운전사들이 경유 가격 급등에 항의하기 위해 곡물 수송용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협력해서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가 없는 경제위기에 직면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식량 위기 속 제2의 아랍의 봄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미노 디폴트’ 위기 놓인 개도국=28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이날부터 2주 동안 보건 분야와 같은 필수 서비스 외 연료 판매를 하지 않기로 했다. 스리랑카 정부 대변인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휘발유와 경유를 비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며,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이 중단되는 만큼 재택근무를 하라고 촉구했다. 도시 지역의 학교도 문을 닫을 예정이다. 지난달 국가 부도를 선언한 이후 보유 외환액도 바닥을 치며 국가 기간산업으로 여겨지는 석유 수입·판매 시장도 외국에 개방하기로 했다.
라오스와 파키스탄도 부채 위기를 겪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라오스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8%에 달하는 145억 달러(약 18조7427억 원)다.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기획개발부 장관이 “대출을 이용해 차(茶)를 수입하므로, 차 마시는 것을 좀 줄여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할 정도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올 연말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7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49%에서 52%로 3%포인트 올렸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 전 세계 기준 아프리카 짐바브웨(80%)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2년 6개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안 그래도 부패한 관료 시스템에 찌들었던 신흥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료비와 비료값 상승으로 식품 소비자가격이 올랐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계들이 줄줄이 줄도산하며 국가 재정 파탄이란 화살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줄 파업’ 나선 노동자들 = 고물가를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도 줄줄이 파업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루 트럭 운전기사들과 농부들은 지난 27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연료와 비료값 상승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좌파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연간 물가상승률이 24년 만에 최고 수준인 8%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곡물 수송업자들이 운임을 인상해달라며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서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조만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할 계획이다. 에콰도르에서는 연료값 상승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연일 격화하며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의 탄핵안이 의회 표결에 부쳐지기도 했다. 탄핵안은 재적의원 137명 중 80명만 찬성하며 부결됐다. 가결에는 정원 3분의 2인 92표 이상이 필요했다.
외신들은 특히 최근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 바람이 분 중남미 국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기준금리 인상, 공격적인 긴축 정책 등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중남미 지역의 경제 문제를 단번에 개선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알베르토 라모스 연구원은 중남미 지역의 이러한 조치들이 “인플레이션을 다룰 수 있는 ‘만병통치약(실버 불릿)’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공급망 붕괴 등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상황이라 신흥 시장에 대한 투자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제2의 ‘아랍의 봄’ 바람 부나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각국은 창고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전격 중단한 데 이어 인도는 밀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도 국내 공급을 위해 농산물 수출을 금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농부들은 경작지를 줄이거나 지난해 대비 파종량을 현저히 줄이고 있다고 한다. FT는 “밀 수확과 관련한 전체 비용이 40% 증가했다고 한다”며 “임금과 운송비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2차 WTO 각료회의에 참석해 수출 금지를 풀어달라고 각국에 요청했지만, 닫힌 빗장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일각에서는 고물가 위기로 식량 위기가 가속화하며 ‘아랍의 봄’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0년 튀니지 혁명 이후 아랍권에 들불처럼 번졌던 ‘아랍의 봄’을 촉발한 것 역시 고물가 등 경제 위기였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남수단, 예멘, 소말리아 등 6개국은 현재 식량 위기의 수준이 ‘최고 경계’ 상황으로, 재난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약 75만 명이 기아와 죽음의 공포와 맞서고 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식량을 의존하고 있었는데, 두 나라 간 전쟁이 촉발되며 수급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외 내전, 홍수 등 각국의 상황도 사회 불안에 일조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아이티, 시리아, 케냐, 앙골라, 레바논 등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식량 위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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