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화장실서 지휘자 만날 일 없었는데..김은선의 '금의환향'

임석규 2022. 6. 3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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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김은선
작년부터 100년 전통 오페라단 지휘
새달 서울시향과 고국 데뷔무대
내년 '오페라 종가' 라스칼라 무대
젊은 시절 정명훈 커리어에 필적
7월21·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김은선. 사진작가 김태환 제공

김은선(42)은 세계 무대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지휘자다. 국내보다 유럽과 미국에서 명성이 더 높다. 100년 전통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음악감독으로 지난해 8월 취임한 그가 다음달 한국 무대에 선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어 사실상 ‘금의환향’하는 ‘고국 데뷔무대’다. 오는 7월21·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하는 그를 28일 화상 간담회를 통해 만났다.

그의 음악 인생 내내 따라붙었던 말은 ‘여성 최초’, ‘동양 여성 지휘자’. 하지만 그는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기자들이 그에 대해 물으면 “그 질문은 받고 싶지 않다. 음악에 관해서만 물어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공연 끝나면 여성분들이 제게 와서 그래요. ‘그냥 당신이 거기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영감이 된다’고요. 제가 그런 존재가 된다면 감사한 일이겠지요.” 그는 이어서 신시내티 오케스트라에서 겪었던 얘기를 꺼냈다. “은퇴하는 여성 비올라 주자와 화장실에서 마주쳤어요. 그분이 ‘평생 여자화장실에서 지휘자를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여기서 만나니까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일로 제가 사회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다. 베이스 연광철의 독창회였다. 당시 팸플릿에 이름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 김은선이 지난해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지휘했다. 언론의 극찬이 잇따랐고, <뉴욕 타임스>는 클래식 음악 분야 ‘2022년의 샛별’로 그를 선정했다. <오징어 게임>의 주연 배우 이정재와 함께였다. 내년엔 ‘오페라의 종가’ 격인 이탈리아의 명문 라스칼라의 지휘봉도 잡는다. 빈 국립오페라, 베를린 국립오페라 등 독일의 최상급 무대에선 이미 성공적인 공연을 했다. 이런 이유들로 젊은 시절 정명훈의 커리어를 능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이유는 뭘까. 다니엘 바렌보임(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키릴 페트렌코(베를린 필하모닉) 등 ‘최고 거장’들의 보조 지휘자로 일하며 닦은 기량이 이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의 단단한 마음가짐도 한 이유다. “매년 바그너 오페라 한곡, 베르디 오페라 한곡, 널리 연주되는 오페라 한곡, 동시대 현대 오페라 한곡씩 공연하면서 확고한 저의 레퍼토리를 쌓아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김은선은 공연 지휘 외에도 연주할 레퍼토리를 선정하고 오페라 가수와 객원지휘자를 선정하는 등 전반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태환 제공

그는 “음악감독이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자신의 일상 업무도 소개했다. “지휘 말고도 (공연) 레퍼토리를 선정하고 스케줄도 짭니다. 객원지휘자와 오페라 가수들 선정도 다 음악감독인 제 업무죠. 전체를 다 아우르는 일입니다.” ‘오페라 전문가’로 통하지만 관현악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직에도 관심이 있는 그다. “스케줄이 된다면 주로 교향곡을 연주하는 다른 오케스트라 감독직도 맡고 싶다”고 했다.

원래 그의 전공은 지휘가 아니라 작곡이었다. 스승인 최승한 연세대 음대 교수의 권유로 지휘를 접하게 됐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해요. 이 길이 맞다 생각하면 길게 보고 긴 호흡으로 가면 돼요.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거기에 가 있을 겁니다. 제 경험이고, 스승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죠.” 그가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다는 얘기다. 여러 차례 그가 강조한 “긴 호흡”이란 말에 그의 음악 철학이 녹아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김은선은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무대에 올라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내년에는 이탈리아 명문 라스칼라 무대에도 데뷔한다. 니콜라이 룬 제공

서울 공연 선곡은 ‘신세계로부터’란 부제가 달린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이다. 그는 “한국인의 장점이 어떤 나라 작곡가든 그 정서에 잘 녹아드는 유연함인데, 그중에서도 슬라브 문화가 한국 정서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선곡 배경을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데뷔 무대에 올린 곡도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였다. 이를 위해 체코어를 공부한 그가 체코어 아리아를 따라 부르는 게 화제가 됐다. 그는 영어와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다.

그의 부친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과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던 김성재씨다. “하반기부터 바빠져요. 내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 100돌 기념 공연을 준비해야 해요. 그사이에 며칠 일정이 비었는데 마침 서울시향에서 좋은 제안이 와서 부모님도 만나 뵐 겸 서울 공연을 기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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