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25전쟁영웅' 남아공 제2전투비행대대..1만2천여회 출격

김지헌 2022. 6. 3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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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6·25전쟁 중 최전방 기지에서 다수 전과를 올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를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남아공 정부는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함에 따라 제2전투비행대대 파병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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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6·25전쟁영웅에 남아공 제2전투비행대대 [국가보훈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중 최전방 기지에서 다수 전과를 올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제2전투비행대대를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부대는 6·25전쟁 당시 부산 수영, 평양, 수원, 진해, 여의도, 횡성, 오산 비행장 등에 배치돼 작전했고, 연 병력 826명이 참전해 총 1만2천405회 출격했다.

적군 전차 40여대, 야포 220여문, 대공포 147문, 보급품 보급소 500여 곳 등을 파괴·파손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36명이 전사하고 8명이 포로가 됐다.

남아공 정부는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함에 따라 제2전투비행대대 파병을 결정했다.

당시 남아공은 한국과 외교관계가 없었고 아프리카 최남단이어서 거리가 멀다는 난제에도 한국으로 병력을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약해 '창공의 치타'(Flying Cheetahs)라는 별칭을 얻은 남아공 제2전투비행대대는 1950년 9월 26일 대대장 테론(S.V.B. Theron) 중령을 비롯한 206명이 남아공 더반항을 떠나 11월 5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F-51 무스탕 전투기 16대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뒤 11월 15일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이동했으며 실제 전투 임무를 개시한 1950년 11월 19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활약했다.

남아공 제2전투비행대대는 6·25전쟁 참전에 따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무공훈장 11개, 미국 은성훈장 2개를 비롯한 각종 훈장 1천109개, 유엔 훈장 797개 등을 받았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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