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헤어질 결심' 박해일 "난도 높은 감정신, 혼자 세트장 찾아가 리허설했었죠"

추승현 기자 2022. 6.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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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의 해준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 / 사진=CJ ENM 제공
[서울경제]

배우 박해일은 데뷔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첫 경험하는 것들이 많다. 형사 역도 처음이고, 외국 배우와의 멜로 호흡도 처음이다. 왠지 당연히 호흡을 맞춰봤을 것만 같은 박찬욱 감독과도 첫 작업이다. 모든 게 놀랍고 신나고 흥미로운 것 투성이었다.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과정을 담았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으로 제 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주연 배우 탕웨이와 박해일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박해일이 연기한 해준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형사와는 많이 다르다.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은 전혀 없고, 단정하고 차분하다. 딱 떨어지는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맨다. 직업정신이 투철해 수사 도구들을 넣어 다닐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외투도 맞춰 입는다.

“해준을 처음 마주하고 ‘박찬욱 감독님이 만들어내는 형사라는 이미지가 이런 모습이야?’라고 놀랐어요. 배우로서 첫 번째로 해보게 된 형사 역인데 (그런 이미지여서) 궁금했죠. ‘살인의 추억’ 등 한국 영화가 주로 형사를 대하는 방식과 달라요. 드라마 톤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형사면 ‘내가 재밌게 잘해보고 싶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해준스럽지 않고 기존에 있는 형사물이면 제가 더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에게 맞는, 내가 잘해볼 수 있는 형사를 기다렸어요.”

박 감독은 처음부터 해준 역에 박해일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보통 각본을 완성해놓고 캐스팅 단계를 거치는 것과 달랐다. 그렇다 보니 시나리오에도 박해일의 성질이 많이 녹아들었다. 박해일도 그런 흔적들을 좇아가며 해준을 만들어 갔다.

“말투에도 흔적이 있어요. 감독님이 표현하신 것 중에 (저의 전작) ‘덕혜옹주’ 김장한 캐릭터의 클래식한 느낌이 있다고 설명하셨어요. 그런 작은 요소들을 활용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시나리오에서 품격 있는 대사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시나리오에 형사인 해준이 시적인 언어를 쓴다는 거죠. 문어체적인 대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보니 형사라는 이미지와 충돌될 수 있는데, 낯선 부분도 있지만 더 흥미 유발이 되더라고요.”

형사인 해준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서래를 심문하는 과정이 남녀가 연애하며 밀당(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 같이 보여서다. 그런 묘한 뉘앙스를 갖고 연기하라는 박 감독의 지시는 없었지만, 두 배우가 캐스팅된 상황에서 시나리오가 쓰여 충분한 그림이 그려졌다.

“시나리오에 충실하면 그런 기분이 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대사나 지문, 상황들이 뉘앙스가 풍기게끔 돼 있었죠. 심문실 공간 안에서 스시를 먹는다든가 같이 치운다든가 그런 경우는 낯설잖아요. 어느 정도 (대본을 보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어요. ‘살인의 추억’ 때 취조실 연기는 해봤지만 같은 공간에서 그런 연기를 해보니 매력 있더라고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진공 상태에서 미세한 호흡과 눈빛, 말의 떨림 이런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 사진=CJ ENM

매 순간 만족하는 연기만 할 수 없다. 감독의 디렉션을 통해 완성되는 신도 있고 스태프들이 배우의 부족한 구멍들을 메워져 배우가 빛나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뒷받침되더라도 배우가 해내지 않으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깊거나 확장시키거나 배우가 혼자 해내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감정적으로 서래를 맞닥뜨리며 그녀에 대한 의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는 연기를 해야 했죠. 절벽에 가서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감정을 토로하잖아요.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그 장문의 대사가 난도 높은 신이라고 염두에 뒀어요. 그래서 무대 세트가 만들어지고 있는 와중에 혼자 가서 리허설도 해봤고요. 준비를 했고 긴장감 있게 해서 감독님도 만족하는 장면이 나와서 희열감을 느꼈어요.”

이 모든 것을 함께한 상대 배우 탕웨이와의 호흡도 완벽했다. 그녀가 현장에서 연기하는 방식을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박해일은 “탕웨이가 중국에서 연극, 영화와 연출을 전공했다고 하더라. 탕웨이는 박 감독님과 ‘내 캐릭터가 왜 이렇게 연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디테일하게 이야기하고 이해가 돼야 감정을 쏟아내는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건 하나의 배우만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걸 쏟아내고 감독님과 이야기하는 방식의 배우도 있거든요. 전 초기에는 몰라서 물어보는 게 많았다면 지금은 시나리오 작업 때 많이 물어보고 메모를 해놔요. 이해가 안 되거나 내 옷에 맞지 않는다면 설득을 바라든지 같이 상응하는 장면으로 필터링하는 준비를 하게 되는데, 전 후자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탕웨이를 보면서 흥미로웠어요.”

박 감독과의 작업은 언제나 기다려왔다. 기회가 온 순간 받아본 시나리오는 ‘이게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야?’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담백했다. 워낙 박 감독의 전작들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들이라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렇지만 곧 ‘박 감독님의 영화인 것은 맞구나’라고 여겼다.

“박 감독님과 첫 작업이다 보니 낯설고 새로웠어요. 감독님의 배려 덕분인 것 같은데 촬영할 때는 더 호기심이 생기고 흥미롭게 촬영을 해내갔어요. 작품의 결과 톤이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지만 미묘하고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들이 꽤 많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섬세하게 잡아가는 게 재밌었어요. 탕웨이와 제작진들까지 익숙한 것을 낯선 방식으로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죠.”

박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미장센은 ‘헤어질 결심’에서도 두드러진다. 박해일 역시 연기할 때는 몰랐던 것을 완성작에서 보고 ‘그렇게 준비했던 것들이 이렇게 풀리는구나’라고 느꼈다. 박찬욱이라는 창작자를 더 느끼게 되는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된 새로운 경험이었다.

“박 감독님이 변수에 대한 많은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어요. 시나리오와 콘티 부분에 집착을 하신다고 느꼈죠.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고 장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수백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시나리오와 콘티를 보고 현장에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고, 소통의 수단인 거잖아요. 보이지 않는 내공이 그런 데서 느껴지더라고요.”

“탕웨이도 그런 것에 놀라워했어요. 저는 탕웨이도 전작에서 비슷하게 했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놀라워하더라고요. 이런 콘티로 준비돼서 촬영한다는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중국 영화계에 자신이 이런 것들을 알려줘야겠다고 했어요. 한국에서도 이런 기법을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아요.”(웃음)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이제 끝났고 관객들이 감상할 일만 남았다. 끝까지 보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후기 중에) ‘다른 식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말이 있었어요. 어느 시선인지는 각자의 영역에 맡기겠지만 입체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아요. 제목이 ‘헤어질 결심’이라면 그 결심을 하기까지 고단하고 신중하고 힘들었던 과정이 있지 않을까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 결심은 관객들이 즐겨야 하는 것이니 해석은 남겨놓겠습니다.”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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