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46)함 없의 낳ㅁ

김종목 기자 2022. 6.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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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43월은 있 없이 틈 없에 드는 길이다. 노자 늙은이의 한자(漢字)를 풀 때는 어림잡지 않아야 한다. 글자 그대로 보아야 하고 그 글자에 담긴 뜻도 있는 그대로를 풀어야 알게 된다. ‘있 없이 틈 없에 듦’을 그대로 옮기면 ‘무유입무간(無有入無間)’이다. 이때 무와 유는 ‘없’과 ‘있’이지 다른 말이 아니다. ‘없’과 ‘있’에 빗대어 다른 말로 이러쿵저러쿵 푸는 것은 ‘없’과 ‘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말 뜻은 한자의 속뜻과 놀랍도록 똑같다.

이 부드러운 바람이 강을 거슬러 산골짜기로 오르는 걸 봐. 세상의 가장 굳은 데로 달리어 뛰면서 세상의 온갖 잘몬들을 어루만지잖아. 닝겔, 흐르는 시선2, 2022,아이패드.

‘없’은 무(無)가 깃든 ‘업’과 유(有)가 깃든 ‘잇’이 하나로 갈마든 것이다. ‘있’은 잇고 있는 것이고. 또 ‘없’에는 압(陽)과 엄(陰)도 깃들어 있다. 이응(ㅇ)에 아래아(ㆍ)가 붙고 받침으로 미음(ㅁ)과 비읍(ㅂ)이 붙은 꼴이다.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듯이 ‘아’와 비읍(ㅂ), ‘어’와 미음(ㅁ)은 볕(陽)과 그늘(陰)의 속뜻을 갖는다. 다석일지 1955년 12월 11일에 압(父)과 엄(母)이라 쓴 게 나온다. ‘없’ 하나에 엄압(陰陽)이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없’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없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없’은 있없(有無)이 번갈아 돌아가는 한 꼴 차림이요, 엄압(陰陽)이 움 솟아 돌아가는 움돌(氣運)이며, 가없이 큰 숨이 돌아가는 큰긋(太極)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없’은 집집 우주의 이응(ㅇ), 소우주의 나(ㆍ), 잇고 잇는 (ᅟᅵᆺ), 미음의 빛(ㅂ)이다. 어(ㅓ)는 품에 안다는 뜻도 있다. 미음(ㅁ)은 하늘(ㄱ)과 땅(ㄴ)이 하나로 가득 찬 참(滿)이고. 그것들을 다 이어서 풀면, ‘없’이란 집집 우주와 소우주가 서로 품 안고 빛으로 솟아 잇고 잇는 ‘있’이라는 얘기다. 한 마디로 빈탕의 텅 빈 집집 우주라는 것. 비었으니(虛) ‘없’이요, 그 비어 빈 숨(氣)이 또한 ‘있’의 꼭지 아닌가!

없긋(無極)이 큰긋(太極)이니 ‘없’에 이미 돌아가는 큰 숨(大氣)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없’ 하나를 잘 꿰어야 참(眞)도 보이고 길(道)도 보인다. ‘없이 있다’는 것은 없이 없으로 있는 없이니 자꾸 ‘있’만 보아서는 안 된다. 몬(物)이 있에 났고, 있이 없에 났다는 40월의 그 짧은 참소리를 잊지 말자. 결국 ‘없’ 하나다. 참도 ‘없’ 하나요, 길도 ‘없’ 하나다. ‘없’ 하나로 다 꿰어진다. 없에 있이, 있에 몬이 움 솟아 돈다. 41월에서 “길은 숨어 이름 없어라. 그저 길만이 잘 빌려주고 또 이루네.”라고 한 것을 늘 잊지 말자.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아담을 몬으로 꼴을 빚어 얼숨(生命靈)을 불어 넣는다. 아담은 아들일까? 아니다. 하와로 쪼개지기 전까지 아담은 첫 사람일 뿐이다. 첫 사람 아담은 아들도 딸도 아니다. 아니 아들도 딸도 다 품고 있는 첫 사람이다. 그를 아담카드몬이라고 부른다. 없이 계시는 하느님이 몬으로 빚은 꼴에 얼숨을 불어 넣었으니 ‘있’은 몬이 아니라 산숨이요, 얼숨이다. 가없이 큰 숨이 몬의 참꼴이다. 자, 43월을 보자.

사슴뿔과 사랑이가 강나루에 섰다. 강을 건너간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둘은 오래오래 불 옆에 앉아서 어두운 강을 바라보았다. 불이 환하게 타오를 때는 강이 캄캄했으나, 불이 잦아들자 강은 맑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부드러운 바람은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세상 온갖 것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사슴뿔 : 몬으로 꼴을 빚어 크고 큰 숨을 불어 넣자 그 숨이 몬으로 스며서 4백조 살알이 살아서 움직였다네. 가장 부드러운 숨이 가장 굳은 데로 달리어 뛰는 꼴이야. 6월을 풀면서 “소믈소믈 그럴듯 있”다는 말을 “‘있’이 겨우겨우 이어지는 꼴”로 보아야 한다면서 “스스로 저절로 있어 돌아가는 산알이니 써도 힘들지 않다네.”라고 했다네. 다석어록에 “4백조의 살알이 여기에 살알을 넘어서는 인격이 생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4백조 살알이 저마다 정신을 차릴 때 놀라운 전체 정신인 영원한 인격이 구성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이 있지. 4백조 살알을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이 가장 부드러운 숨이 아니겠는가.

사랑이 : 부드러움은 굳음의 꼭대기요, 굳음은 부드러움의 꽁무니야. 그것들은 한 꼴로 꽁무니를 물고 돌아가지. 봄이 내달려서 겨울의 끝에 이르지만, 그 끄트머리를 이어서 다시 봄이 달리지. 소믈소믈 그럴 듯 있어 쓰는데 힘들지 않아. 이 부드러운 바람이 강을 거슬러 산골짜기로 오르는 걸 봐. 세상의 가장 굳은 데로 달리어 뛰면서 세상의 온갖 잘몬들을 어루만지잖아. 그래서 골검(谷神)은 죽지 않는 것이지.

떠돌이 : 있 없는 큰 숨 바람이 틈 없에 드는 꼴이라네. ‘있’이 없으니 빈탕의 텅 빔이지 않은가. 텅 빔은 오롯한 하나지! 텅 비어 빈 빈탕의 그 하나는 틈이 없어도 든다네. 그 틈 없에 든 것이 부드러운 숨이요, 산숨(生命)의 바람, 얼숨(生靈)의 바람이라네. 부드러운 산숨의 바람, 얼숨의 바람은 빈탕의 텅 빔에서 ‘있’의 온갖 잘몬들을 낳고 낳고 되고 되고 이루도록 한다네.

사랑이 : 아하, 그래서 함없(無爲)의 ‘낳ㅁ’(益)이라 했군. 익(益)이라는 글자는 더하고 더한다는 뜻도 있고, 늘고 있다는 뜻도 있지. 그런데 다석은 그 글자를 낳고 낳고 되고 되고 이루는 뜻의 생생화화(生生化化)로 풀었어. 세상 가장 부드러운 숨 바람이 가장 굳은데 달리어 뛰고, 있 없이 틈 없에 들어 하는 일 없이 더하잖아. 스스로 저절로 온갖 잘몬을 낳고 낳고 되고 이루는 길 올바름(道理)이야. 히읗과 미음을 ‘나’에 받침으로 쓴 것이 놀라워. ‘낳ㅁ’으로 풀어도 크게 틀리진 않아. ‘나’(生)를 하늘땅(ㅁ)에 가득 하실(ㅎ)로 이어이 잇고 있는 것이잖아.

사슴뿔 : 말 않는 가르침(不言之敎). 그 사이에 작은 글씨로 ‘일리지’를 넣었네. ‘일리다’는 ‘일으키다’를 뜻하는 경기사투리지. 그러므로 말 않는 가르침이란 말을 일으키지 않고 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라네. 억지로 말을 않는 게 아니라 말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가르친다는 뜻이 담긴 것이라네. 그러니 어떻게 그런 가르침과 함없(無爲)의 ‘낳ㅁ’을 세상에 미치도록(及) 한단 말인가. 그렇게 가 닿아 미치는(及)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네.

사랑이 : 세상에서는 말을 일으키지 않고 가르칠 수 없고, 무엇을 한 적이 없는데도 다 이루어지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런데 길(道)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몰라. 말 일으키지 않고 가르치는데 참이 있고, 함 없이 저절로 낳고 되고 이루는 그 길에 참올(眞理)이 있다는 것을! 큰 숨이 저절로 낳고 낳으니 다 가져오고 다 가져다주고 다 이루지. 자, 그럼 43월을 새로써 볼까?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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