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입력 2022. 6. 30.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대순 지구촌사랑교회 담임목사·시인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거반 다 죽게 됐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 지나쳐 갔다. 그때 그 길을 지나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여관에 데려가서 간호하고 주인에게 치료비를 미리 지불하고 떠났다. 여관 주인에게 떠나면서 강도 만난 자의 치료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그 당시 종교적 특권 계층의 사람이다. 누가복음을 통해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에 대한 답은 바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서 이야기하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랑의 사람이다. 이달 일어났던 이야기다. 승용차에 비상등을 켜두고 리어카를 끌고 가는 장면을 뒤차들이 조용히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장면을 알아봤더니 어떤 연세가 높은 어른이 종이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기가 힘들어 보여서 승용차를 멈추고 안전한 곳까지 가져다 줬단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탈선하는 성인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N번방 이야기처럼. 그러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따뜻한 사랑의 가슴을 가진 많은 이웃의 손길도 여전히 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란 질문의 대답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겠는가. 흥미로운 점은 다 죽게 된 사람을 구해 준 것이 제사장과 바리새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은 항상 강도 만난 이웃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강도 만난 자의 소리를 외면하면 우리도 제사장과 레위 사람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웃의 아픈 소리를 외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의 이유와 변명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

신광현 선교사의 이야기다. 2007년 새 학기를 시작할 때 학교에 2인조 권총 강도가 들어왔다. 강도는 교감 선생과 비서 그리고 교사 두 명의 손발을 묶고 위협하여 금고를 털어 달아났다. 강도는 입학금과 수업료 그리고 교과서비를 빼앗았다.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 뉴스에도 방송됐다. 학교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는 한동안 낯선 사람만 봐도 경계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곳 파라과이에 왔는가. 과연 파라과이 사람이 내 이웃인가라는 물음 앞에 한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힘들었던 이유를 깨달았다고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는 '누가 내 이웃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가 되는가'가 중요하단 걸 알게 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마치며 "너도 이같이 하라"고 강조하신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지 정의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행위란 것이다. 요한일서3:18-19절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말씀을 한다. 예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는 "너도 이같이 행하라" 이 한 마디에 있다. 행동은 말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 모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람처럼 우리 시대의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면 안 되는 것일까.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