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젠더이슈는 '제로섬 게임'이 됐을까? 성평등 정책의 미래는[두 얼굴의 공정]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유선희 기자 2022. 6.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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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젠더 갈등 그 너머

여성가족부 폐지론에 대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정치권의 공정 프레임이 갈등 부추겨
노동·가족 등 녹인 성평등 정책 필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그것, 바로 ‘여성가족부 폐지’다. 소위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가 제기한 공정 논란과 능력주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노동정책을 기점으로 시작됐는데 대선을 거치며 이대남의 표심 잡기, 젠더갈등으로 그 초점이 옮겨졌다. 정치권의 젠더갈등론은 성별에 따른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받지만 어찌됐든 성평등 정책은 중대 기로에 놓여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여가부 폐지 방침이 명확하다면서 청년들과의 타운홀미팅을 통해 젠더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은 수면 아래 가려져있던 성폭력을 사회 의제로 끄집어내고 페미니즘이 리부트(재부흥)하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백래시(반동)와의 대결 구도 속에서 성평등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풍부하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경향신문은 지식 콘텐츠 스타트업인 언더스코어와 함께 전국 단위 설문조사를 의뢰해 청년들의 젠더 인식을 알아본 뒤 전문가들로부터 젠더갈등의 맥락과 성평등 정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설문조사 분석은 수도권 거주 여부·가구 소득 수준·직업 상태·결혼 여부 등 변수를 엄격하게 통제한 후 이뤄졌다.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청년 남성들

설문조사에서는 일단 청년 남성 응답자군이 젠더이슈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성 지원 정책 및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여성도 군대에 갈 필요가 있다’ 문장에 대한 공감도를 물었다. ‘매우 반대’부터 ‘매우 동의’까지 1~5점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모든 문항에서 남성 응답자는 젊을수록 부정적 태도를 드러냈다. 여성 응답자가 나이가 많을수록 부정적 태도를 드러낸 것과 반대다.

20·30대 청년 응답자 답변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페미니즘 지지에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이 남성은 5.5%에 불과했지만 여성은 40.3%에 달해 7배 이상 차이가 났다.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는 응답 비율도 남성은 12.4%였지만, 여성은 69.6%로 5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청년층에서 남성과 여성의 젠더이슈에 대한 인식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난 반면, 40·50·60대 응답자군에서는 성별에 따른 페미니즘 인식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청년 응답자 답변을 학력별로 세분화해 보면, 지방사립대에서 교육받은 청년 남성의 90.9%가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하·전문대·지방사립대·지방국립대·서울 4년제·대학원 중 지방사립대 청년 남성이 페미니즘에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반면 서울 4년제 대학에서 교육받은 청년 여성은 54.1%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답해 긍정 답변이 가장 많았다.

청년 남성들, 젠더 이슈에 ‘부정적’
“페미 지지” 응답 여성, 남성의 약 8배

이 같은 조사 결과는 2011·2012년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중 젠더이슈 관련 질문을 결합해 페미니즘 지지도로 재구성했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 젊을수록 페미니즘에 우호적이었던 것과 다르다. 당시 조사에서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는 제한돼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청년 남성과 중장년 남성 답변이 비슷하게 나타나, 청년 남성이 더욱 여성 차별에 둔감한 경향은 관찰되지 않았다.

한편 설문조사에서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청년 여성 응답자군에서 레즈비언을 지지하는 만큼 게이·트랜스젠더를 지지하지는 않는 현상을 포착했다. 페미니즘 지지도에 따라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는 권리를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라는 문장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를 물었다. 전체적으로 청년 여성의 긍정 답변 비율이 청년 남성보다 높았지만, 청년 여성 응답자군 내에서 페미니즘 지지도가 높을수록 레즈비언을 지지하는 정도와 게이·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정도의 차이가 컸다.

응답 비율로 따져보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청년 여성 응답자군의 61.5%는 레즈비언이 사회적 약자라고 답변한 반면, 게이에 대해서는 40.3%만 그렇다고 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40대 이상 여성 응답자군에서는 같은 질문에 대해 각각 40.3%, 35.4%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레즈비언과 게이가 사회적 약자라는 절대적인 인식 정도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청년 여성층에서 약간 높지만, 같은 성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게이가 레즈비언보다 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 61% “레즈비언은 사회적 약자”
같은 성소수자 게이엔 40%만 “그렇다”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페미니즘을 매우 지지한다고 답한 청년 여성 응답자군과 페미니즘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청년 여성 응답자군이 트랜스젠더가 사회적 약자라는 데 공감하지 않는 비율은 각각 60.3%, 64.1%로 큰 차이가 없었다. 페미니즘 지지 정도가 중간 수준인 응답자들이 29.3%만 공감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2020년 초 한 트랜스젠더의 숙명여대 입학을 놓고 일각에서 ‘여대는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래디컬 페미니스트 일종인 터프(TERF)의 존재가 언론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언더스코어는 “현재 청년 남성들이 여성 의제에 부정적인 양상은 단순히 20대 시절 누구나 거쳐가는 연령적 특성이라기보다는 1990년대생의 세대적 특성일 가능성이 높다”며 “사회적 불만의 해결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젠더이슈가 각자도생 시대의 윤리로 다뤄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청년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여성주의로 해석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게이나 트랜스여성(MTF·Male to Female)의 타고난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자 의제에서 배제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대립구도 벗어나 젠더관계 변화 봐야”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전문가들은 노동과 가족 등 영역에서 달라진 질서들이 젠더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남녀의 갈등구도로만 접근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성이 징병 의무를 도맡아 그에 따른 보상으로 노동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은 돌봄노동자 역할을 맡았던 가부장적 질서가 더 이상 보편적인 현실이 아니게 되면서 젠더관계는 이전과 달라졌지만, 정치권이 그 변화를 이용만 하고 사회적 언어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노동 불안정과 가족 구성의 불확실성도 마주하고 있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은 “돈 잘 벌어서 결혼하고 싶은 n포세대라는 핵심 서사의 주체들은 남성이었고, 페미니즘 리부트는 기존 남성 중심의 청년 담론에 대한 반발 속에서 나왔다”며 “저출산 담론 속에서 청년 남성은 생계부양자로서의 경제적 불안에 주목한 반면, 노동시장에 나와 이전과 다른 생애설계를 하는 여성들에게는 아이를 왜 안 낳느냐는 주문만 받았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남성과 여성의 문제는 결국은 붙어있고 이전과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맺는 시대적 조건이 있다”며 “이것을 이대남과 이대녀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설정하는 순간 젠더갈등 구도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월7일 535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근에서 성평등 관점의 여성폭력 방지 전담부처가 필요하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노동의 불안정성·경쟁 심해졌지만
사회경제적 문제는 주목 못 받아
“더 세밀한 원인 분석과 대책 나와야”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젠더관계의 변화를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것이냐는 비전이 나와야 하는 국면에서 주류 정치가 청년세대 담론을 호명하면서 잠식돼버렸다”며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삶의 불안정성 증대, 경쟁의 심화 속에서 왜 남성과 여성의 긴장이 발생하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엄 교수는 청년 남성들이 제시하는 논리는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백래시보다는 포스트 페미니즘에 가깝다는 분석도 했다. 엄 교수는 “포스트 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을 연루시키고 의제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단순한 백래시가 아니다. (특정 집단이) 여초이니까 남성이 30% 들어와야 된다는 식으로 페미니즘을 전유하는 것”이라며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파이를 놓고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이냐는 방식으로만 평등을 상상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 남성들의 젠더이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과 반발로 정의하는 데서 나아가 더 세밀한 원인 분석과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보명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청년세대 안에서 교육·노동에서의 경쟁이 치열하고 촘촘해지는 한편 세대 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낮아지거나 오히려 하향 이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여성채용목표제 같은 정책적 개입이 ‘페미니즘은 불공정’이라는 오인된 인식을 낳게 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 교수는 “20대 여성들의 페미니즘 실천이 시작된 배경은 젠더폭력에 대한 처벌 문제나 노동시장·가족관계에서의 변화 양상과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들이 있지만 인터넷이나 정치권의 젠더갈등 담론 구도는 공정 프레임으로 집중된다”며 “이것이 젠더관계를 개인 여성과 개인 남성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파편화하는 효과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성평등 정책은 어떻게 돼야 할까. 김 교수는 “여성정책은 여성을 출산이나 돌봄의 도구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젠더주류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노동·가족·정치 모두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보다 자율적이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기획하고 구성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고 했다. 김원정 센터장은 “(성차별적인) 관행과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조금 더 정책의 중심에 세우고,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해 적극적 조치와 구조적 관행 개선을 병행할 것인지 하나하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시리즈 끝>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혜리·유선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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