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캥거루족도 고령화

강경희 논설위원 2022. 6. 3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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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그렇게 엄마를 떠나고 싶어 안달이더니 결혼 앞두고 엄마의 숟가락이 필요하다며 눌러앉은 게 벌써 4년이 되었네요. 월세 받아야 하는데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청약통장과 종신보험도 제가 내주지요.” 캥거루족 아들과 함께 사는 노모가 온라인에 글을 띄웠다. 캥거루 자식들 사연도 넘쳐난다.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 차라리 떳떳한 캥거루족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모님 집에 얹혀서 하는 부동산 투자가 최고라고 합니다. 어떤 재테크를 하든 캥거루는 이득입니다.”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를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밤보치오니’(bamboccioni·큰 아기)라 부른다. 2년 전 자신의 계약직 교사 연봉이 적으니 부모한테 돈 달라고 소송을 낸 35세 남성에 대해 이탈리아 대법원이 “부모가 매달 300유로의 용돈만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다른 유럽 국가 같으면 30대 자식한테 무슨 용돈이냐며 황당한 판결이라고 여겼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준 교육적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그만큼 이탈리아는 자녀들을 오래 뒷바라지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가족 중심 문화에, 높은 청년 실업으로 생겨난 현상이다.

▶3년 전 일본 도쿄에서 76세 아버지가 44세 아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농림수산성 차관까지 지낸 사람이었다. 아들은 캥거루족일 뿐만 아니라 게임에 빠져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다.

▶초고령사회에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은 4050 중년의 캥거루가 7080 부모에게 얹혀사는 ‘7040′ ‘8050′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1990년대 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살던 20대 캥거루족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그대로 나이 먹어 50대 캥거루가 됐다고 한다. 이들은 70~80대 노부모가 타는 연금으로 먹고산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그야말로 생계 수단이 끊긴다. 캥거루 고령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그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50세 미만 성인 10명 중 3명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같이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이 없거나 결혼을 안 하면 거의 절반이 부모에 얹혀산다. 그저 자립이 좀 늦어지는 게 아니고, 영원히 독립 못 하는 중장년 캥거루다. ‘7040′ ‘8050′ 문제가 우리에게도 현실로 닥쳐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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